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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202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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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첫 글.. 근황202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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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근황202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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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근황2023.10.17
대나무 숲
거짓말!!
겨우 참았다.
삼 십 대 초반의 젊은 여성분이었다.
지금 나의 맞은편에 앉아서 끝나지 않을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나와 같은 회사 직원이다.
하는 업무는 다르지만 임직원이라는 공통분모는 말을 가려서 하게 했고,전혀 공감가지 않는 그 사람의 입 밖으로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의 집중을 하게 했다.
2달 전쯤,센터를 통해서 휴대폰 잠금이 갑자기 걸렸다는 고객의 로그가 하나 전달이 되었다.
본인은 잠금을 설정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비밀번호가 맞지 않다고 나오고 잠금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 함께 전달된 이슈의 내용이었다.
잠금 이슈는 항상 긴장하게 한다.
SW문제이든 고객의 망각이든 잠금을 못 풀면 단말의 데이터는 복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경험하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미칠 일이 분명하다는 공감 때문에 항상 긴장을 하면서 로그를 확인한다.
'에잇.. 뭐야..'
'바꿨네..'
비밀번호는 최근 변경 이력이 있었다.
본인은 휴대폰 비밀번호를 변경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변경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비밀번호 변경만큼은 초 단위로 로그를 남기고 어떤 화면을 거쳐서 변경이 되었는 지까지 로그로 남기고 있다.
휴.. 그래도버그가 아니니 전후 사정을 잘 설명해서 기억만 잘 상기되도록 한다면
비밀번호를 기억해 내고 데이터도 다시 복구할 수 있겠다 싶어 안도의 한숨으로 로그 분석 내용과 함께 회신을 했다.
그다음 고객 대응은 서비스 센터의 영역인지라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사내 게시판에 장문의 불만 글이 올라왔다.
자신은 아주 오래전부터 똑같은 비밀번호만 사용을 해왔다.
어느 날 갑자기 잠금 화면이 풀리지 않았다.
서비스센터에 갔더니 내가 변경했다고만 하더라.
나의 데이터는 복구할 방법이 없고 초기화를 해야 된다고 한다.
나는 억울하다.
그 억울함은 분노의 필체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내 게시판을 모니터링하는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이 임직원 휴대폰을 빌려줄 테니 분석을 해달란다.
최근 불거진 중소기업대표 이슈로 인해 개발실은 잠금이 풀리지 않는 이슈들을 모두 전수 조사하고 있었고, 우리가 미쳐 놓친 SW 버그가 있는지를 리뷰하는 중이었다.
해당 임직원이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은 금방 사람들의 공감대를 받아서 너도 나도 안타깝다. 요즘 SW품질 왜 이러냐 등 근거 없는 비방이 달리고 있었기에
나 역시 최대한 빨리 휴대폰을 받아서 분석을 하고 싶었다.
어렵사리 확보한 휴대폰이 내 손에 도착했다.
품질, 검증, 다른 개발 부서 담당자들까지 연락이 온다.
'분석은 끝이 났습니까? 특이사항은 없던가요?' 그만큼 모두들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는 상황이었다.
심호흡을 하고 로그를 살폈다.
어디서 많이 본 패턴이다.
지난번에 CS를 통해서 들어왔던 그 로그와 동일했다.
같은 사람이었다.
한껏 긴장했던 마음이 풀리면서 짜증이 그 빈 공간을 채웠다.
"뭐야…"
본인의 망각을 SW 문제로 이슈화하고 다수로부터 비난을 받게 한 아주 괘씸한 경우인지라 사과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지. 본인이 변경을 하고도 모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비밀번호가 변경된 그 시간대에 휴대폰으로 어떤 다른 일을 했는지, 무슨 게임을 했고 인스타는 몇 번 들어갔고, 그 뒤로 무엇을 했는지를 정리해서 기억을 살리기 위한 로그 분석을 진행했다.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같은 회사 사람이라는 조금의 인연이라는 배려였다.
로그 분석 결과에 대한 그분의 대답은 분석 내용이 틀렸다는 것이다.
여전히 본인은 비번 변경한 적이 없으며,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 너무나도 비밀번호로 잠금 해제를 잘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개발팀 분석 내용을 전달하고 휴대폰을 돌려주러 간 다른 부서 사람이 전화가 왔다.
'임직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개발 분석이 잘못된 것 아닌가요?'
다들 그렇다.
단말에 남겨진 로그보다는 고객의 기억력을 신뢰한다.
'아닙니다.'
나의 목소리에 단호함이 느껴졌는지 더하고 싶었던 의심은 접어둔 채
직접 임직원을 만나서 설명을 좀 더 해줄 수 있냐고 부탁을 한다.
부탁인지 자신의 부담을 자연스레 넘기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이 참에 사과를 받고 싶어서 그러겠노라 약속을 했다.
막상 마주 앉아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사과를 받는 건 과한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말에 남겨진 로그와 전혀 다른 기억을 가지고 마치 어제 일인 양 나에게 설명을 하는 그 사람을 지켜보며
나에게 분석을 의뢰한 휴대폰의 소유주가 이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까지 생겼다.
기억의 왜곡을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이 사람은 영영 휴대폰의 버그로 인해 본인이 피해를 봤다는 생각을 각인하겠다 싶었다.
결론은 나지 않았다
전혀 좁혀지지 않는 팽팽한 평행선은 각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원인이 무엇이건, 내가 생각하는 원인은 명확하지만, 그 사람은 휴대폰에 저장된 오랜 데이터를 살리지 못하게 된 안타까움이 있고 나는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일을 하느라 에너지를 쏟은 안타까움이 있다.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서로가 서로의 안타까움에 도움을 주지 못함에 미안해하는 척
실은 본인의 안타까움을 해결하지 못한 찜찜함을 가진 채.
나는 풀지 못한 이 안타까움을 대나무 숲에다가 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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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첫 글.. 근황
행복하지 않다
불쑥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출근길 그래야 될 것 같아 틀어둔 영어 회화는 소음처럼 윙윙거리고
가기 싫은 출근길을 더 가기 싫게 만드는 교통 체증은 답답한 마음처럼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짜증은 났지만 큰일은 아니다. 종종 겪는 일이고, 이 별것 아닌 일이 나의 행복을 판단할 정도는 당연히 아니다.
다만 목 끝까지 차올라 언제 터질까 초조하게 기다리던 내 마음속 트리거의 역할은 충분했으리라.
난 왜 즐겁지가 않지..
친구들처럼 골프를 치면 즐거울까?
술을 마시면 즐거워지려나
남들은 정말 즐거운가?
행복하지가 않다.
그간 티 내지 않으려 행여나 나의 가족이 속상하지 않을까 힘들게 참아왔던 말인지라
툭 터져 나온 말에 깜짝 놀라 주변부터 둘러봤다.
나의 이런 모습도 원인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조금의 비난도 받지 않으려다 보니
늘 다른 모습의 나로 살고 있다.
내가 나로 살지 않은데 행복할 수가 있을까.
늘 해법은 없다.
원인은 나에게 있는데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를 밖에서 찾고 있었다.
나답게 산다.
내 인생을 산다는 건..
정말 어려운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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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근황
참 피곤한 시간이다.
그래서 뭔가를 끄적이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는다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 하루가 넘어가기 1시간 전에 다시 돌아왔다.
집이 주는 푸근함에 잠시 소파에 누워있다가 샤워를 하고 어지럽혀진 집안을 한번 정리하고 나니 다음날이 되어있다.
또 내일을.. 아니지 오늘 아침을 기약하며 부족한 잠을 채워야 되는 시간이다.
"허망하다."
허망이라는 단어가 이럴 때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좋지 않은 마음 상태, 망해버린 하루를 표현하고 싶었다.
"카톡.."
아무말이나 시도 때도 없이 나누는 회사 동료 카톡 방에 맥주 캔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술 없인 살 수가 없네요."
평소 맥주 한잔에도 얼굴이 빨개지는 동료인데, 허세스러운 말에서 조금은 그 진심이 느껴진다. 무슨 마음인지 왜 모르겠냐
'에잇.. '
요즘 매일같이 인생 최대 몸무게를 갱신하고 있어서 자제 중이었는데 맥주캔을 하나 들었다.
오늘은 잠이 아니라 술로 이 허망함을 채워야겠다.
요즘 관계가 소원해진 애가 한 명 있다.
회사 입사하고부터 지금까지니깐 20년 가까이를 꽤 가깝게 지내왔다.
다툼의 순간은 짧았지만 회복은 쉽지가 않다.
긴 세월의 친분은 상처난 마음의 치유를 빠르게 할 줄 알았는데, 그 긴 시간이 주는 섭섭함으로 회복을 더디게 한다.
덕분에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난 변화가 없다
그런데 왜? 좋았던 관계가 어색해졌을까?
그래, 너가 잘 맞추면서 지내줬던 거구나.. 그리고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고.
나도 그리고 너도 우린 모두 사회생활을 한 거구나...
관계
"나 이제 인간관계를 다시 생각해볼까 해
아무 말이나 나누는 친구와의 대화방에 무심코 던진 화두였다.
"어떻게?
"내가 내일 이 회사를 나간다고 하자.. 과연 이 회사에서 만난 인연 중에 연락을 하고 지낼 사람이 누가 있을까?
"두루두루 사람들하고 잘 지내는 오빠가 그런 얘기를 하다니 의외군
"넌 있을 것 같아?
"나는 진작에 연락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결론을 낸 상태지..
"...
'부질없다'는 이럴 때 사용하기에는 딱 어울리는 단어이다.
회사에서 받는 업무적인 스트레스는 내가 받는 월급만큼 받고 있다.
회사에서 받는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 이건 딱히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퇴근을 해도 나를 따라다닌다.
즉, 회사 생활의 무료봉사다. 이러한 무료봉사는 퇴사를 해야 끝나겠지.
책상 위 노트를 정리하다 누가 볼까 봐 흑색 볼펜으로 동글동글 덧칠로 지워버린 문구가 보였다.
나는 이미 너를 정리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과 단 둘이 있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정을 떼려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당시 누구에게 이렇게 분노를 했던 것일까?
그 분노가 쉽게 사그라들진 않았을 텐데
난 요즘 얼마나 큰 가면을 쓰고 회사에 앉아있는 것인가..
요즘.. 근황
지난주 생일 덕에 지인들의 연락을 꽤 받았다.
정작 나 자신은 무덤덤해진 생일인데 챙겨주는 고마움에 그간 나의 무심함을 반성하기도 했다.
"가을인데 괜찮아?"
3년 넘게 만나지 못한 입사 동기가 생일 축하 겸 안부를 물어왔다.
가을.. 그래..난 참 유난히 가을에 힘겨워했었지..
옷장에서 애정하는 니트를 꺼내는 순간부터 알 수 없는 묘한 몽글몽글한 감정에,
별일 아닌 글귀에도 코끝 찡해지고..
세상 가장 슬픈 시련을 당한 비운의 남자인냥 우울한 표정을 했더랬지.
"에휴..이제 늙어서 가을 탈 기운도 없어.."
더이상 계절에 따라 기분 조절도 못하는 그런 어린 애가 아니라는 것을 돌려서 말하고 싶었나보다...
실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노하우가 하나 더 생겼을 뿐..
난 가을이라는 계절의 꼭대기에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