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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섭섭함
스무명 남짓의 작은 팀의 리더가 되면서부터 팀원들의 경조사는 꼭 챙기려고 한다
특히, 조사의 경우는 가능하면 직접 조문을 가는 편이다.
기쁜 일은 이미 그 자체로 충분한 축복이지만,
슬픈 순간 함께하는 마음으로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것이 진정한 동료애라고 믿어왔다.
팀원 여럿이 함께가는 조문이 대부분이긴하나,
한번씩 혼자서 가야할 때가 있다.
휴일이거나 장례식장이 멀리 다른 지역인 경우 보통 조의금만 전달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다.
솔직히 나도 갈등을 한다.
'이해하겠지?' '아니야, 그래도 직접 가서 얼굴을 보고 위로를 해야지' '하지만, 차로 세 시간 거리면 휴일 다 갈텐데...'
자연스럽게 휴식을 즐기고 싶은 나와,
책임감 있는 리더로서의 내가 긴 싸움을 벌이지만, 결국 리더가 이긴다.
먼 길을 달려 도착한 나를 본 상주의 얼굴은 보통 놀라움과 고마움의 중간 어디쯤이 대부분이다.
평소엔 보기 힘든 슬픔 가득한 동료의 얼굴을 마주하며, 아침 내내 망설였던 나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동시에 '난 참 좋은 동료이자 리더'라고 속으로 으쓱하게 된다.
참 멋진 리더야.. 라는 생각을 할즈음 동료가 가족에게 나를 소개한다.
'이 분은 나한테 일시키는 사람인데, '내가 자주 말했지?'
'아...'
순간 공기가 묘하게 흐른다.
"아..."라며 길게 이어지는 인사 뒤에 묘한 표정이 스친다.
묘한 표정에 숨은 뜻은
'아, 당신이 우리 남편을 자주 늦게까지 붙잡아두는 x군요...' 겠지?
그 순간, 동료의 말이 메아리처럼 내 머릿속에 울린다.
'내가 자주 말했지?'
'내가 자주 말했지?'
과연, 집에 가서 무슨 말을 그렇게 자주 했던 걸까?
내가 내 상사 이야기를 집에가서 하는 경우는
딱 한 경우뿐인데..
빌이먹을
괜히 왔나..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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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책읽기
나는 종종 베스트셀러들을 찾아보는 취미가 있다.
정확히는 베스트셀러들의 제목들만 훑어보다.
특히 자기계발 카테고리를 선택하고 스크롤을 하면서 제목들을 살핀다.
묘하게 힐링이 된다.
'XX 관리론', '이렇게 살아라' 와 같은 가르침을 주려는 제목보다는 '남 눈치 보지 말고 너 맘껏 살아라'는 식의 타이틀에서 쾌감을 느낀다.
책 내용은 모른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모습이 아닌 딱 그 반대의 모습으로 살아보라는 제안일꺼라 짐작만 한다.
이렇게 책 제목만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다보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거겠지?'
나만 이렇게 하루하루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사는 건 아닐꺼라는 마음의 치유를 하게 된다.
요즘은 유독 사십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많이 보인다.
사십에 다시 읽는 XXX, 사십에 인생이 어쩌구, 은퇴가 어쩌구.
혹여나해서 삼십, 오십으로도 검색을 해봤는데, 역시나 사십 만큼은 아니다.
왜?
사십대가 되면 유독 고민이 많아지고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 당황스러우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고조되는 나머지
이 불안함을 극복하기 위해 먼저 살아본 사람들의 지혜를 갈구해서일까?
맞다. 나는 그렇다.
매일 비슷한 하루인 듯 하지만 늘 새로운 고민거리들이 생겨난다.
40대에 이건 꼭 하라는 식의 수많은 책들.
과연 작가는 충실히 이행하고 책을 적었을까?
아니면 지키지 못한 본인의 지난 날을 반성하며 뒷따르는 후배들이여 제발 나와 같지 말아라를 외치는 것일까?
지혜를 갈구한다지만 책 내용을 따라할 생각은 없다.
안그래도 피곤한 하루 책의 내용처럼 충실히 살지 못한 나에 대한 스트레스만 생길 것이 뻔하기도 하며,
가랭이 째지는 것도 모르고 갓생러의 삶을 따라해 실패를 반복해 본 경험을 통해,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구분 정도는 할 나이가 되기도 했다.
다만,
다른이의 눈치를 많이 보지 않으면서
내가 보살펴야 되는 가족과 주변인들을 챙기지만
나의 마음도 모른척하지 않는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만의 호흡으로
하나 둘 하나 둘..
이 오르막길을 오르자고 마음을 다잡는 쉼터의 역할로는 충분하다.
어머니의 기억법
"영기 엄마 있잖아
교대 나오고 그 집 아들이 정형외과 의사인데, 며느리도 의사고 어디서 병원 한다더라? 들어도 요즘 자꾸 까먹네, 그런데 그 친구가 이번 주말에 식사 같이 하자고 하는데.. 비가 온다고 하네"
"이모 딸 미숙이
왜 그 큰딸이 하버드 다니고, 둘째 아들이 서울대 들어갔잖아.
그런데 이번에 미숙이 신랑이 부산에서 사업을 크게 하는데 이모들을 초대해서 한번 다녀올게"
나의 어머니는 당신의 지인을 소개할 때면 항상 그 지인의 가족, 친척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함께 덧붙이신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나는 이런 식으로 한번 뵌 적도 없는 엄마 주변 사람들에 대해 익숙해져 갔다.
이러한 소개법이 이상하지 않냐고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와이프였다.
"어머님은 왜 본론과 상관없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하시는 거야?"
처음에는 이게 무슨 질문인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내게 어머니의 지인 소개법은 나 스스로 숟가락 들고 밥 먹기 시작할 때랑 그 세월이 같으니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글쎄... 잘 모르겠어.
근데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근데 그 소개가 좀 잘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그런 것 같지 않아?"
"이렇게 성공한 사람이 내 친구다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거라는 거지?"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아내는 분명 그렇게 느꼈겠지만 시어머니를 쉽게 속물로 치부하는 건 조심스러웠던지 말끝을 흐렸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 소개법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했었던 것 같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은 일 잘해?라는 질문에
'아.. 그 친구 대전에서 데이터베이스 전공했는데 해병대 출신이래, ADD에서 인턴을 했다는데
아직 여자친구는 없나 봐.. 일? 일은 모르지...'라는 설명을 주절주절 했던 것 같다.
갑작스러운 와이프의 질문은
지난 인생의 테이프를 빠른 배속으로 훑게 만들었다.
왜 그랬지?
어머니의 영향인가?
어떤 사람을 기억하는 나만의 방법인가?
그렇다면 왜 그 사람의 학업 결과나 직업으로 기억을 하고 있을까?
SKY 나와서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가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것을 알림으로 나도 덩달아 으쓱해지고 싶어서?
아무리 객관적으로 나의 맘을 찾아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다.
나 스스로도 이러한 행동의 이유를 찾지 못한 채 , 하지만 그 이후로는 나만의 기억법을 최대한 입 밖으로 내지 않으려 의식하며 지냈다.
"엄마 친구 영숙이
이화여대 나오고 남편이 교수하다가 이제 은퇴하고 나와서 집에만 있는데
그런데 영숙이가 어제 산에서 도토리를 많이 주웠는데 묵을 어떻게 만드냐고 연락이 왔더라."
오랜만에 듣게 된 익숙한 어머니의 화법은 묻어뒀던 나의 궁금증을 끄집어냈다.
"엄마. 엄마는 왜 그 사람 이야기를 하면 그 사람의 서사를 다 엮어서 이야기를 시작해요?"
학교를 어디 나왔고 신랑이 누구고, 무슨 일을 하고, 아들은 뭘 하고 있으며... 이런 이야기들"
엄마는 당황한 듯 보였다.
당신 역시 한 번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을 테고, 이러한 질문도 처음 받아보셨을 거니.
"글쎄다..그 친구를 생각하면 그 친구 인생에서 가장 큰, 중요한 일들이 함께 생각이 나네.
엄마 고향 성주 촌에서 그 시절에 이화여대 가는게 어디 흔한 일이겠니
서울서 대학 다닌 친구 결혼을 하는데 남편이 교수라고 시골 동네가 떠들석 했거든
그러다보니 그 친구를 떠올리면 그런 기억들이 그냥 따라나오나보네
아들이 어느 대학 들어갔다더라, 취직은 어디 했다느니, 결혼은 누구랑 했는지
우리 나이되면 그런 것들이 큰 일이니까 말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아니. 그렇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입학, 취업, 결혼, 그리고 출산 등등, 이렇게 이어지는 한 사람 인생의 소중한 행사를 함께 기억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
성공한 지인을 통해 자존감을 올려보려는 게 아닌, 그 사람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기억이 각인되어 있어 나오는 소개법이라는 생각이 드니 나는 무엇을 중요하다고 기억하고 있는지 곱씹어 보게 되었다.
학교, 직장, 결혼... 어머니의 그것과 크게 다른게 없긴 한데,
아.. 나에게는 군필 여부가 하나 더 있네.
특히 흔해빠진 육해공군이 아닌 해병대를 나왔다는 건 매우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고 있나보다. '그 친구 해병대 나왔대.' 라는 나와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병무기록까지 덧붙이는 것을 보면...
그럼 여성을 기억하는 방법은 ?
그건 뭐 쉽다.
이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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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생일 후기
나이 셈이 달라지는 바람에 정확한 나이도 모르고 산다.
나같이 자기 나이도 모른 채 사는 사람이 많은지
네이버에서는 생일과 오늘 날짜를 입력하면 정확한 나이를 알려주는 서비스도 제공을 한다.
연 나이, 만 나이 48세.
어제 날짜로 계산하니 만 나이가 47세.
아직 50은 아니었구나.
숫자 50이 가진 거대함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아직 2년이 남았다는 데 위안을 삼는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항상 생일날이면 연차를 냈다.
꽤 길게 이어지고 있는 이러한 루틴은 큰 계기나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그러고 싶었던 것 같다.
오롯이 날 위한 하루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매년 나름의 규칙을 더해갔다.
오전 9시 병원 오픈하자마자 들어가서 스케일링을 받고,
극장에 가서 가장 인기 있는 영화를 혼자서 조용히 즐긴다.
서점에 가서 신간들을 뒤적이거나
차를 타고 목적지도 없는 드라이브를 즐기기도 했다.
작년에는 큰 강을 찾아서 조용히 낚시대를 드리우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다이소에 들러 펜과 공책을 여러 개 구입을 했었다.
40대 후반의 아저씨가 마음먹고 낸 휴가의 하루가 너무 소박하고 어찌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하나,
이러한 평범한 하루조차도 일상에서는 쉽게 즐길 수 없기에
나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라고 정당화한 하루의 일탈은 그만큼 소중했으며,
나의 이러한 일탈을 부러워하며 따라하는 동료들도 생겨났다.
오늘은 출근을 했다.
나와 오래 일을 한 동료들이 의아해하며 생일인데 왜 휴가 사용하지 않았냐고 궁금해했다.
이번 달 공휴일이 너무 많아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출근했다며 회사로 그 원인을 돌리며 자연스레
내년 생일에는 다시 쉴 거라는 여지를 남겨뒀다.
사실 나는 이번 달 휴무일에도 출근을 하면서 일을 남기지 않았고
며칠 후 있을 나의 일탈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느 아침과 똑같았다.
아침에 애들 아침 식사를 챙기고 등교를 도와주고 출근 준비를 했다.
둘째 녀석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조금 잔소리를 하고 조금 더 서둘렀다는 것 빼곤.
평소보다 몇 분 가량 늦었는데 회사 가는 길이 쉽지가 않았다.
고속도로 진입로부터 꽉 막힌 차를 보며 답답함을 느끼며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고객님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몇 통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머리가 잠시 멈췄던 것 같다. 그리고는 쭉 늘어선 차들과 함께 고속도로에 올라서고 있었다.
50이라는 숫자의 거대한 이동은 기억의 영역까지 침범한 건가?
이 나이에 생일이 대수냐? 라는 표현은 생일 축하에 대한 민망한 답변으로만 사용하는지 알았는데
진짜 대수가 아닌 일이 되어버렸다.
아쉽다.
눈앞에서 놓쳐버린 물고기가 더 아쉽 듯
합법적으로 방탕할 수 있는 소중한 일탈을 놓쳐버린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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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어느 평가결과를 앞에두고
'삑' 사원증을 찍고 게이트를 통과하고
커피를 한잔 들고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기고
약속된 자기들의 자리에 앉아 지난밤 도착한 새로운 업무를 체크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디 홀린 듯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아침을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회사의 디테일한 관리는
사람들이 불쾌하지 않을 정도의 선을 지키면서 우리를 구속한다.
그 선을 항상 팽팽하게 유지하는 것이 바로 이 회사가 자랑하는 관리의 XX이다.
본인 평가, 직원 간 평가, 상사 평가 등등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 간의 이러한 평가 제도는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면서 자칫 누군가의 나태함으로 헐렁해질 수도 있는 선을 계속 붙들고 있으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시이다.
그리고 이름만 다를 뿐 평가는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스트레스다.
다만 이러한 개인적인 평가는 외부로 오픈되지는 않기에
내 옆자리서 월급 루팡 하는 저 동료보다는 나의 평가가 더 좋겠지라는 자기 위안으로 삼키면 된다.
이에 반해 외부로 오픈이 되어 점수가 낱낱이 공개되는 평가가 하나 있다.
부서와 회사의 건강도를 측정하는 평가이다.
부서원들이 자신이 속해있는 회사에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
부서장에게 불만은 없는지
부서가 본인의 성장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인사 평가는 공정하다고 느끼는지
우리 회사는 도덕적으로 깨끗해서 자랑스러운지
질문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읽다 보면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는 항목들로만 이루어진 평가다.
나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에 대한 평가이자
매 분기 최고 실적이라는 뉴스를 접하지만 직원들 성과급 앞에서는 항상 위기라고 회피하는 회사에 대한 평가인데
고운 말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수 년째 이어져 오는 이 평가의 결과는
학창 시절 수학 성적 마냥 모든 학업 능력을 대표하여 우수생과 열등생을 나누며
노력해도 오르기 쉽지 않아 좌절과 우울을 경험하게 하며
결과 발표 후 2주가량은 본인의 이름 대신에 점수로 불리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끔한다.
'이번에 저 부서 40점이잖아.'
'그래.. 그렇게 부서원들을 쥐어짜는 데 그럴 주 알았다.'
'쉿... 쉿 40점 지나간다.'
주변 동료들의 모든 대화가 이렇게 들리는 환청을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게 낮은 점수의 원인은 부서가 아니라 회사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을이 갑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이 기회가 유일하다.
익명의 보호아래 그간 쌓인 불만을 쏟아 낸 정당한 권리 행사의 결과는
선량한 시민 부서장을 죽이고
마피아에게 농락당한 게임의 결과를 가져왔다.
다음 마피아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선량한 시민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을' 들은
'갑'에 대한 평가를 후하게 줘서 '을'의 시민 한 명을 지켜냈다.
그 결과는 선량한 시민 한 명을 살렸지만
마피아에게도 '훌륭한 갑, 최고의 갑'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관리의 회사는
이렇게 또 관리의 묘미를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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