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 대한 생각

2023. 2. 6. 00:45

어머니께서 오늘 새벽에 별세하셨습니다.
가시는 길 위로와 명복 빌어주시기 바랍니다.
빈소: XXX 장례식장

오랜만에 연락하는데 부고라 미안하다.
그리고 대학 동기들에게 연락 좀 부탁할게....

주말 평온한 아침 연달아 울리는 카톡 소리에 눈을 떠보니 대학 동기였다.
대학 시절 어울려 다니던 8명 남짓 친구들 중 한 명이며,
마지막으로 본 게 그 8명 중 가장 늦게 결혼한 친구의 피로연이었으니
한 십여 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슬픈 소식에 위로를 전하고 나머지 친구들에게 연락은 책임지겠노라 답장을 했다.
어머니를 잃은 친구가 받을 슬픔의 무게가 느껴져 오늘 중 일찍 조문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근데 이 친구가 왜 나한테 대표로 연락을 해서 부탁을 할까? 8명 무리 중에서도 이 친구의 절친은 내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여하튼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려 카톡을 쭈욱 내려보는데 만들어진 단체방이 없다.

그나마 최근까지 연락을 주고받은 친구에게 혹시 동기들 단톡방 있냐고 물어보니
그 친구 역시 없다고 한다.
하기야 나머지 친구들도 십 년 전 그 노총각 친구 결혼식 참석 이후로 못 보다가
울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경황없는 채 만난 게 마지막이고, 그것도 벌써 2년이 넘었으니..

참 친했던 친구들이었는데,
이 연락처가 그 친구가 맞는지 프로필 사진까지 눌러가며 확인을 해야만 했다.
상을 치르고 있을 친구 녀석을 빼고 7명을 한 채팅방에 다 모아놓고

안녕.
내가 보낸 안녕 옆 읽음 숫자가 6, 5, 4, 3 줄어들다가 2 정도 되었을 때
평택서 살고 있는 친구가
안녕하슈~라고 대답을 해준다.

XX 어머님이 돌아가셨어.
빈소는 XX 장례식장이야..

이렇게만 마무리하기에는 좀 뻘쭘해서,
친구 위로해 주자라는 말을 덧붙였다.
위로해 주자는 나의 마지막 말 옆으로 6, 5, 4, 3... 숫자는 줄어들지만 대답은 없다.

오랜 시간의 공백은 우리의 긴 인연을 지워버린 것일까?
안녕하슈~라고 말을 해준 평택 사는 친구가
밤늦게 내려갈 테니 같이 가자고 답을 준다.
그리고 한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방을 퇴장해 버렸다.

졸업하고 사회생활 시작하면서 친구들이 한 명씩 결혼할 때면 다 같이 모여서 축하도 해주고
명절 전후로 타지 생활하는 친구들 모이면 술도 한잔씩 했던 것 같은데
결혼하고 애들 키우고, 그 애들이 벌써 고등학생인 친구도 있고
회사 생활 20년씩 하면서 이제 슬슬 이후를 생각할 나이도 되었으며,
하루하루 맞닥뜨리는 현실을 헤쳐 나가는데 힘을 쏟다 보니 우리의 과거는 챙길 여력이 없나 보다.

20대의 즐거웠던 많은 기억을 함께한 인연이었음에도
이렇게 조사 있을 때 연락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그 소식을 듣는 것에 부담을 가지는 그런 사이가 되어 버렸구나.

평택서 온 친구를 만나 조문을 하고
상을 치르고 있는 친구와 세 명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어머님 병환에 대한 이야기, 애들 몇 학년이냐는 이야기, 요즘 회사 생활 괜찮냐는 물음을 하고 나니
대화가 끊겨버렸다.

이제는 흰머리가 어색하지 않은, 퉁퉁한 부장님 뱃살을 가진 친구들과의 만남이 이렇게 어색하고 불편하다니.
술이라도 마셨다면 20대 학창 시절의 기억을 되뇌며 그 시절 친구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평택으로 다시 올라가야 하는 친구가 옷을 챙겨든다.
지금 출발해도 12시가 넘어야 도착할 것 같다는 걱정으로 출발을 독촉하며 나도 슬며시 일어섰다.

빈소를 늦게 까지 지키며 친구의 슬픔을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나는 여기에 와서 최소한의 의무는 다 했다고 나를 변호하는 게 앞선다.

이렇게 변해가는 우리의 인연에 대한 아쉬움, 안타까움?
현재 겨우 겨우 이어져 오고 있는 우리 만남의 이유인 경조사도 그 약발이 다 할 날이 오겠지.
한 번씩 만나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우리도 20대 청춘인 시절이 있었다는 걸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들이 사라진다는 게 어떤 기분일지.
의외로 너무 쉽게 그리고 자연스레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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