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모습/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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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감독 이해합니다.
주말, 오랜만에 여유롭게 라이온즈 경기를 봤다.
요즘 팀이 상위권 경쟁에서 아슬아슬 밀리는 중이라
한 경기, 한 경기가 괜히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팬 입장에선 그렇다.
야구는 좋아하지만, 평일엔 중계를 챙겨볼 여유가 없다.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이긴 날만 보는 야구팬" 루트를 타고 있는데,
오늘은 직관도 아닌데 이상하게 몰입이 됐다.
문제는, 그 몰입의 방향이 좀 별로였다는 거다.
타자들이 공 세 개를 멀뚱히 바라보다가
방망이 한 번 안 휘두르고 휙 돌아서 나오는 걸 보는데,
내가 다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휘둘러나 보고 나와야지.’
‘왜 가만히 서 있다가 그대로 아웃이 되는 건데.’
‘감독은 도대체 왜 쟤를 계속 내보내는 거지?’
1번부터 9번까지 줄줄이 삽질을 하면
보통은 감독이 선수들 불러다 뭐라도 한 마디 하지 않나?
“이딴 식으로 하면 올해 연봉 반납각이다”
이런 식의 위기감 조성이라도 좀 해줘야 보는 내가 살 것 같은데.
근데 또 생각해 보면…
저 선수들도 결국은 월급 받는 직장인이고,
감독은… 말하자면 팀장쯤 되는 거잖아.
내 팀에도 월급 루팡 있고,
실적이 늘 불안한 팀원도 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정말 단호했나?
사실은 맘에 안 들어도 빙빙 돌려 말하고, 애써 달래고,
“그래도 이건 좀 해보자” 식으로 설득했던 거 같은데.
잠시 카메라에 잡힌 감독의 고뇌에 찬 얼굴을 보며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생각해 보면 참 얄궂다.
팀 성적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늘 감독의 무능을 탓하고,
그 시기가 길어지면 결국 감독은 책임을 지고 떠난다.
누군가는 계속해서 경기장에 남아 있고,
누군가는 조용히 물러나는 것.
리더라는 자리는 어디에서든 쉽지 않다.
성과는 숫자로 평가되고, 그 숫자엔 사람의 감정도, 과정도, 고심도 담기지 않는다.
그래서 리더는 늘 외롭다.
그래서 오늘은 감독한테 손가락질 안 하기로 했다.
아마 그도 지금,
선수들 삼진 당할 때마다 속으로
“야 이 자식들아…” 하며
내 심정과 비슷한 욕을 삼키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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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회사를 가야하니깐
“ㅇㅇ씨 오늘 안 나왔어요?”
출퇴근이 자유로운 회사지만, 대부분 11시 전엔 다들 온다.
업무 미팅이 있어 고개를 돌려봤는데, 자리에 없다.
출근 전인가 싶어 근태 내역을 보니 오늘 연차였다.
연차는 자유롭게 쓰자는 분위기라, 팀원들도 별다른 눈치 없이 결재를 올리고 휴가를 쓴다.
연차 결재는 내가 한다.
하지만 내가 결재한 연차를 달력에 표시해놓지 않으면, 당일에 그게 연차였다는 걸 잊기 쉽다.
퇴근하면서 “내일 연차예요” 한마디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순간 아쉬운 마음이 들다가— 혹시 이 기대 자체가 꼰대 같은 건가? 싶다.
이런 게 갑질의 못된 심뽀라고 스스로 반성을 한다.
요즘처럼 바쁠 때 연차 쓰는 게 눈치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눈치 주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내 지친 얼굴에 묻은 감정의 흔적을
그는 읽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연차 쓸 때 눈치를 본다.
내 연차지만 회사 스케줄 고려하고,
상사 눈치 보고, 동료들 일정도 확인한다.
결국 연말이 되어야 남은 연차를
재택 근무겸 해서 겨우 소진한다.
그때는 그것이 연차인지,
사용해야 하는 의무인지조차 헷갈린다.
어릴 적 아버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하셨다.
몸이 아파도, 피곤해 보여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서셨다.
그 모습은 말없이 내게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아버지의 성실함에서 비롯된 '회사보다 소중한 건 없다'는 믿음은
나의 회사생활 스무 해 동안 날 조여왔다.
그게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걸 최근에야 생각하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주변 동료들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예전엔 저들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삶은 무게 중심이 잘 잡혀 있다.
오히려 나 혼자
어긋난 충성심에 갇혀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충성이라 믿었던 건, 누군가의 가스라이팅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 출근한 ㅇㅇ씨는
초등학생 아들 참관 수업에 다녀왔다며,
그 자리에서 아들의 엉뚱한 질문에 당황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제야 ‘아, 그게 연차 이유였구나’ 싶었다.
나는 아들 둘을 키우면서도 한 번도 참관 수업을 가본 적이 없다.
문득 둘째에게 물었다.
“참관 수업 같은 건 안 해?”
“하는데요.”
“근데 왜 아빠한테 한 번도 말 안 했어?”
“아빠는 회사 가야 하니까요. 그냥 말 안 했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아이의 말에서 짠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문득,
나도 모르게 이 아이에게도
회사란 몸보다, 가족보다 더 중요한 곳이라고 가르쳐버린 건 아닐까 라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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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되어버렸다
“아빠도 청년이야?”
아이가 뉴스를 보며 말했다.
화면에는 ‘농촌 인구 감소로 49세도 청년으로 분류’라는 자막이 떠 있었다.
마흔아홉이 청년이라니. 노동자는 늙어도,
사회는 그들을 여전히 ‘쓸 수 있는 인력’으로 보고 싶어 한다.
교육 과열 지역에 살다 보니
주변 학교마다 대학입학 결과 현수막을 경쟁적으로 걸어둔다
과거에는 서울대 합격자가 학교의 자랑이었지만,
이제는 의대에 몇 명을 보냈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한 학교에서 70명 이상의 학생이 의대에 갔다고 한다.
사회가 늙어져도 의사가 많아 더 오래 살겠구나.
이 사회의 다른 부분들은 어떻게 될까?
의사가 많아지면 모두가 오래 살 것이라고 믿는 걸까?
출산율은 낮아지고, 노동 연령은 높아지고 있다.
조만간 50대, 60대도 청년으로 불릴 것이다.
그것이 ‘경제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겠지.
이것은 단순한 사회 변화가 아니다.
몇 년 안에 반드시 터질 문제다.
하지만 권력자들은 지금만 괜찮다면 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내는 걱정의 목소리는 ‘불필요한 갈등’이라는 이름으로 묵살된다.
최근 우리 사회는 끊임없는 분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친 지도자 하나와 그의 추종세력들로 인해
국민들은 아까운 그들의 에너지를 쓸데없는 싸움에 쏟아붓는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논쟁만 남는다.
그 사이, 우리는 점점 더 늙어가고, 청년이라는 단어마저 희미해진다.
아까운 하루하루가 소모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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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은 항상 옳다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이불킥을 하게 만드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나, 6학년이었나. 아무튼 그즈음이었다.
그 시절에는 ‘신체검사’라는 명목 아래 키, 몸무게, 그리고 가슴둘레까지 재는 대단히 굴욕적인 행사가 있었다.
남자애들은 대부분 흰 런닝 한 장 걸친 채로 측정대에 올랐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남자애들의 검사가 끝나고 여자애들의 차례가 되었을 때였다.
그때 반에서 키가 가장 컸던 여자애가 대뜸 말했다.
"남자애들은 교실 밖으로 나가줘"
순간, 내 머릿속에 "???"가 떠올랐다.
왜 우리가 나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기엔 너무 어렸고, 무엇보다 추운 복도로 쫓겨나야 한다는 게 부당하게 느껴졌다.
'이건 명백한 불공정 아닌가?'
불합리한 요구는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외쳤다.
"우리가 검사받을 때 너희는 교실에 있었잖아! 그런데 왜 우리는 나가야 해?"
당시 반장이었던 내 한마디에 남자애들도 웅성거리며 동조하기 시작했다.
교실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선생님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이동진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는 건, 그때의 충격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키 크고, 얼굴도 하얗고 잘생겼던 부반장.
내가 반장이라는 것 말고는 모든 면에서 우월해 보였던 친구.
그 친구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나갈게."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문을 열고 나갔다.
남자애들도 하나둘 상의를 주섬주섬 챙겨 입으며 따라 나갔다.
여자애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패배감이라고 하기엔 뭔가 달랐다.
단순히 부끄럽다고 하기엔 더 복잡한 감정이었다. 그저, 찌질한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이동진과 나를 비교하는 순간마다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좀 더 넓게 보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깨닫기 시작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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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사무실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팀장님의 질책 섞인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이 답변, 대체 누가 올린 거예요?"
고객 게시판에 올라간 답변이 문제였다.
사실, 개발팀은 이미 해당 이슈를 알고 있었다.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도 인정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 숙제처럼 미뤄지고 있던 문제였다.
그런데 고객이 불만을 제기했다.
정상적인 대응은 이랬어야 했다.
"네, 고객님.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언제까지 수정하여 새로운 SW를 배포하겠습니다."
하지만 대응 담당자는 이렇게 답변을 남겼다.
"좀 더 정확한 이슈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문제 영상을 촬영해 주세요."
고객은 빡쳤다.
"옛다, 비교 영상!"
경쟁사 제품과의 차이를 보여주는 영상을 올려버리며, 수동적인 대응을 비난하는 글까지 남겼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대외 담당자는 보통 개발팀에 VOC를 공유하며 "이거 어떻게 답변하면 될까요?"라고 묻는다.
그럼 개발팀은 "로그 좀 첨부해 달라고 해 주세요"라든가,
"이건 이미 수정된 거라 곧 패치 나가요" 같은 답을 준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과정 없이 대응 담당자가 단독으로 답변을 올려버린 것이다.
왜?
개발팀이 늘 바쁘니까.
좀 더 정확한 정보를 확보한 후 전달해야겠다는 선의의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꼬여버리니, 결국 질책받을 사람만 생겼다.
어떻게 보고해야 할까.
사실대로 말하면 담당자의 실수를 지적하는 꼴이 되고,
그렇다고 덮어둘 수도 없고...
옆자리 동료가 내게 의견을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나는 고민했다.
"음... 당사자가 직접 팀장님께 보고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괜히 우리가 끼면, 그 사람을 꼰지르는 것 같기도 하고, 이후 관계도 껄끄러워질 것 같고..."
"그렇죠? 난감하네요."
내 대답에서 회피하려는 기색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때, 옆자리 동료가 불쑥 말했다.
"제가 팀장님께 보고할게요.
누구의 잘못을 따지려는 게 아니라,
이번에는 조금 미흡했지만 앞으로 더 신중히 대응하겠다고 하면 될 것 같아요."
그 순간, 띵— 했다.
초등학교 시절의 그 찌질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처럼, 이번에도 나는 상대방 입장은 생각지 않고 나만 생각한 것이다.
어쩌면 인생은 크고 작은 ‘이동진’들과 마주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어떤 순간엔 내가 반장처럼 쪼잔하게 굴고,
또 어떤 순간엔 이동진처럼 쿨하게 넘길 수도 있는 거다.
이 나이를 먹고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게 있나 보다.
후회할 일을 줄이며 나아가야 하는데,
결국 또 하나의 이불킥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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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처방받다
"그래서, 병원에서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유독 큰 눈을 가진 중년의 의사가 내 이야기를 다 들은 후 던진 첫마디였다.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품고 찾아온 걸까.
갑자기 서운한 감정이 밀려왔다.
최근, 회사 업무에서 오는 불안감이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불안과 답답함은 내 모든 감정을 집어삼키고, 신체적인 무기력함까지 불러왔다.
아주 오랜 시간 조금씩 조금씩 축적되어 온 업무에 대한 거부감은
작년에 이어 올해 또다시 터진 이슈로 인해 증폭되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주기적으로 나의 삶을 뒤흔드는 상황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선뜻 결정하기 쉽지 않았지만,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판단했고, 큰 마음을 먹고 정신의학과를 찾았다.
내가 기대했던 온화한 분위기의 병원도, 내 말에 깊이 공감해 주는 의사도 없었다.
일상에 지친 듯한, 나와 비슷한 연배의 의사는 몇 번 주기적으로 끄덕이며 한동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는 내 증상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조곤조곤 마음을 내보였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냐니…'
되묻고 싶었다.
"무엇을 도와줄 수 있나요?"
하지만 다시 힘을 내어 몇 마디를 덧붙였다.
"제가 느끼는 이런 불안감이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지극히 정상적인 수준이라면, 감내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눈에 제가 지나치게 예민한 상태로 보인다면, 방안을 제시해 주세요."
가벼운 몇 가지 테스트가 진행되었고,
의사는 내 불안 수치가 꽤 높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안정제를 처방하겠다고 말했다.
“많은 중간 관리자들이 경험하는 일상적인 일입니다.
지나고 나면 괜찮아질 수도 있겠지만,
원치 않는 일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주기적으로 본인을 괴롭힌다면,
약이 일시적인 도움은 줄 수 있어도, 결국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네요.”
안정제를 손에 쥐고 병원을 나서며 생각했다.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업무 변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안감을 동력으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누구도 잘못이 없는데 잘못이 있는 것 같은 이 지긋한 분쟁에서의 탈출은
떠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정제는 먹지 않을 것이다.
그저 약통을 앞에 두는 것만으로도 나를 도와줄 내 편이 하나 생긴 듯한 기분이 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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