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모습

청년이 되어버렸다

2025. 3. 26. 09:16

“아빠도 청년이야?”
아이가 뉴스를 보며 말했다.
화면에는 ‘농촌 인구 감소로 49세도 청년으로 분류’라는 자막이 떠 있었다.
마흔아홉이 청년이라니. 노동자는 늙어도,
사회는 그들을 여전히 ‘쓸 수 있는 인력’으로 보고 싶어 한다.

교육 과열 지역에 살다 보니
주변 학교마다 대학입학 결과 현수막을 경쟁적으로 걸어둔다
과거에는 서울대 합격자가 학교의 자랑이었지만,
이제는 의대에 몇 명을 보냈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한 학교에서 70명 이상의 학생이 의대에 갔다고 한다.
사회가 늙어져도 의사가 많아 더 오래 살겠구나.
이 사회의 다른 부분들은 어떻게 될까?
의사가 많아지면 모두가 오래 살 것이라고 믿는 걸까?

출산율은 낮아지고, 노동 연령은 높아지고 있다.
조만간 50대, 60대도 청년으로 불릴 것이다.
그것이 ‘경제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겠지.

이것은 단순한 사회 변화가 아니다.
몇 년 안에 반드시 터질 문제다.
하지만 권력자들은 지금만 괜찮다면 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내는 걱정의 목소리는 ‘불필요한 갈등’이라는 이름으로 묵살된다.

최근 우리 사회는 끊임없는 분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친 지도자 하나와 그의 추종세력들로 인해
국민들은 아까운 그들의 에너지를 쓸데없는 싸움에 쏟아붓는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논쟁만 남는다.
그 사이, 우리는 점점 더 늙어가고, 청년이라는 단어마저 희미해진다.
아까운 하루하루가 소모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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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3. 10. 07:47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이불킥을 하게 만드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나, 6학년이었나. 아무튼 그즈음이었다.
그 시절에는 ‘신체검사’라는 명목 아래 키, 몸무게, 그리고 가슴둘레까지 재는 대단히 굴욕적인 행사가 있었다. 
남자애들은 대부분 흰 런닝 한 장 걸친 채로 측정대에 올랐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남자애들의 검사가 끝나고 여자애들의 차례가 되었을 때였다.
그때 반에서 키가 가장 컸던 여자애가 대뜸 말했다.

"남자애들은 교실 밖으로 나가줘"

순간, 내 머릿속에 "???"가 떠올랐다.
왜 우리가 나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기엔 너무 어렸고, 무엇보다 추운 복도로 쫓겨나야 한다는 게 부당하게 느껴졌다.

'이건 명백한 불공정 아닌가?'
불합리한 요구는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외쳤다.

"우리가 검사받을 때 너희는 교실에 있었잖아! 그런데 왜 우리는 나가야 해?"
당시 반장이었던 내 한마디에 남자애들도 웅성거리며 동조하기 시작했다. 
교실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선생님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이동진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는 건, 그때의 충격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키 크고, 얼굴도 하얗고 잘생겼던 부반장.
내가 반장이라는 것 말고는 모든 면에서 우월해 보였던 친구.
그 친구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나갈게."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문을 열고 나갔다.
남자애들도 하나둘 상의를 주섬주섬 챙겨 입으며 따라 나갔다.
여자애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패배감이라고 하기엔 뭔가 달랐다. 
단순히 부끄럽다고 하기엔 더 복잡한 감정이었다. 그저, 찌질한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이동진과 나를 비교하는 순간마다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좀 더 넓게 보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깨닫기 시작했을 것이다.

---------------

오늘 아침, 사무실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팀장님의 질책 섞인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이 답변, 대체 누가 올린 거예요?"
고객 게시판에 올라간 답변이 문제였다.

사실, 개발팀은 이미 해당 이슈를 알고 있었다.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도 인정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 숙제처럼 미뤄지고 있던 문제였다.
그런데 고객이 불만을 제기했다.

정상적인 대응은 이랬어야 했다.
"네, 고객님.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언제까지 수정하여 새로운 SW를 배포하겠습니다."

하지만 대응 담당자는 이렇게 답변을 남겼다.

"좀 더 정확한 이슈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문제 영상을 촬영해 주세요."

고객은 빡쳤다.
"옛다, 비교 영상!"
경쟁사 제품과의 차이를 보여주는 영상을 올려버리며, 수동적인 대응을 비난하는 글까지 남겼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대외 담당자는 보통 개발팀에 VOC를 공유하며 "이거 어떻게 답변하면 될까요?"라고 묻는다.
그럼 개발팀은 "로그 좀 첨부해 달라고 해 주세요"라든가, 
"이건 이미 수정된 거라 곧 패치 나가요" 같은 답을 준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과정 없이 대응 담당자가 단독으로 답변을 올려버린 것이다.

왜?

개발팀이 늘 바쁘니까.
좀 더 정확한 정보를 확보한 후 전달해야겠다는 선의의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꼬여버리니, 결국 질책받을 사람만 생겼다.

어떻게 보고해야 할까.
사실대로 말하면 담당자의 실수를 지적하는 꼴이 되고,
그렇다고 덮어둘 수도 없고...

옆자리 동료가 내게 의견을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나는 고민했다.

"음... 당사자가 직접 팀장님께 보고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괜히 우리가 끼면, 그 사람을 꼰지르는 것 같기도 하고, 이후 관계도 껄끄러워질 것 같고..."

"그렇죠? 난감하네요."

내 대답에서 회피하려는 기색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때, 옆자리 동료가 불쑥 말했다.
"제가 팀장님께 보고할게요.
누구의 잘못을 따지려는 게 아니라,
이번에는 조금 미흡했지만 앞으로 더 신중히 대응하겠다고 하면 될 것 같아요."

그 순간, 띵— 했다.

초등학교 시절의 그 찌질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처럼, 이번에도 나는 상대방 입장은 생각지 않고 나만 생각한 것이다.

어쩌면 인생은 크고 작은 ‘이동진’들과 마주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어떤 순간엔 내가 반장처럼 쪼잔하게 굴고,
또 어떤 순간엔 이동진처럼 쿨하게 넘길 수도 있는 거다.
이 나이를 먹고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게 있나 보다.
후회할 일을 줄이며 나아가야 하는데,
결국 또 하나의 이불킥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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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2. 21. 15:15

"그래서, 병원에서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유독 큰 눈을 가진 중년의 의사가 내 이야기를 다 들은 후 던진 첫마디였다.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품고 찾아온 걸까.
갑자기 서운한 감정이 밀려왔다.

최근, 회사 업무에서 오는 불안감이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불안과 답답함은 내 모든 감정을 집어삼키고, 신체적인 무기력함까지 불러왔다.
아주 오랜 시간 조금씩 조금씩 축적되어 온 업무에 대한 거부감은
작년에 이어 올해 또다시 터진 이슈로 인해 증폭되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주기적으로 나의 삶을 뒤흔드는 상황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선뜻 결정하기 쉽지 않았지만,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판단했고, 큰 마음을 먹고 정신의학과를 찾았다.
내가 기대했던 온화한 분위기의 병원도, 내 말에 깊이 공감해 주는 의사도 없었다.
일상에 지친 듯한, 나와 비슷한 연배의 의사는 몇 번 주기적으로 끄덕이며 한동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는 내 증상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조곤조곤 마음을 내보였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냐니…'
되묻고 싶었다.
"무엇을 도와줄 수 있나요?"
하지만 다시 힘을 내어 몇 마디를 덧붙였다.

"제가 느끼는 이런 불안감이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지극히 정상적인 수준이라면, 감내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눈에 제가 지나치게 예민한 상태로 보인다면, 방안을 제시해 주세요."

가벼운 몇 가지 테스트가 진행되었고,
의사는 내 불안 수치가 꽤 높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안정제를 처방하겠다고 말했다.

“많은 중간 관리자들이 경험하는 일상적인 일입니다.
지나고 나면 괜찮아질 수도 있겠지만,
원치 않는 일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주기적으로 본인을 괴롭힌다면,
약이 일시적인 도움은 줄 수 있어도, 결국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네요.”

안정제를 손에 쥐고 병원을 나서며 생각했다.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업무 변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안감을 동력으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누구도 잘못이 없는데 잘못이 있는 것 같은 이 지긋한 분쟁에서의 탈출은 
떠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정제는 먹지 않을 것이다.
그저 약통을 앞에 두는 것만으로도 나를 도와줄 내 편이 하나 생긴 듯한 기분이 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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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 결과 여기저기 혹도 있다 하고
고혈압에 고지혈 등등 없던 병들이 한 줄씩 늘었다.
스스로도 건강에 대한 자신이 없어졌고,
비슷한 또래 동료들이 벌써 건강에 신경 쓰는 모습들에 자극을 받아서 헬스장에 등록했다.

이른 새벽 헬스장은 약수터와 같은 풍경이다.
나이 지긋하신 동네 어르신들이 본인만의 루틴으로 저마다의 운동을 하신다.
수십 년을 해온 것 같은 정형화된 운동 동작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탄탄한 몸매의 비결임을 보여준다.
이 공간에서 나는 가장 어린애였다.
나이도, 근육도.

운동이라고는 평생 해본 적이 없으니 헬스장에 가도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 무작정 뛰었다.
새벽 6시 헬스장 오픈시간에 가서 3~5킬로를 뛰고 출근을 했다.
등록하고 4달이 지났다.
뛰는 건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다.
뛰면서도 계속 내적 갈등을 한다.
‘그만 뛸까…’

살은 빠졌다.
4킬로 정도 빠졌지만 다들 잘 모른다.
관심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지나친 관심도 있다.
종종 본가에 들를 때면 오십 줄 바라보는 아들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채고, 세상 가장 큰일인 양 걱정하는 어머니.
엄마 눈에 나는 아직 어린애다.

최근 날이 많이 쌀쌀해졌다.
따뜻한 이불 밖을 나오는 게 힘들어졌다.
내적 갈등을 심하게 한다.
따스함의 유혹에 굴복한 다음 날 헬스장에 갔더니
이제 같은 약수터 멤버로 받아들인 어르신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말을 건넨다.
“무슨 일 있어? 왜 안 왔어?”
내적 갈등 시 이불 밖을 박차고 일어나야 할 이유가 하나 생겨버렸다.

미용실 원장님은 한 달에 한 번씩 본다.
어제는 커트를 하다 말고 살이 빠진 것 같다고, 다이어트하냐고 물었다.
수줍게 그렇다고 했다.
본인은 너무 살이 쪄서 걱정인데 대단하다며
어떻게 뺐느냐고, 달리기가 효과가 좋구나 하며 말했다.
나의 변화를 알아봐 준 두 번째 사람이기에 지나친 관심이 불편하지 않았다.
이렇게 마무리되었다면 참 좋았으련만…
마지막 드라이를 하면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제 그만 살 뺄 거죠?”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머뭇거리는 나에게
“급격하게 운동을 하면 머리도 많이 빠져요. 이미 좀 가늘어진 것 같아요”라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몸의 변화를 알려줬다.
당황하며 나오는데,
“고기와 단백질을 충분히 먹어야 해요”라는 조언도 알차게 남겼다.
의도치 않은 빠짐이 있었구나.

내일 아침, 이불 안에 남아 있어야 할 아주 큰 이유가 생겨버렸다.

ai가 그려준 현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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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기분

2024. 12. 5. 01:21

입사 때부터 함께한 동료가 있다.
회사에서 만난 인연치고는 꽤 오래, 그리고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는 두 살 어린 동생이다.

이 관계가 이렇게 지속될 수 있었던 건, ‘형님, 형님’ 하며 변함없이 따르는 이 친구의 노력도 크지만, 무엇보다 회사 생활에서 생긴 스트레스와 고민을 종종 나눌 수 있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이 친구의 가장 큰 고민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미치겠어요, 형님.”
메신저로 그렇게 말을 걸어오면, 나는 ‘아, 또 한계에 다다랐구나’ 싶어 대화를 받아준다.

“왜? 무슨 일이야?”

“A 부서 담당자가 단체 채팅방에서 이러쿵저러쿵 물어보는데, 그건 B가 답해야 하잖아요.”

“그렇지, 그게 B의 역할이지.”

“근데 안 해요. 제가 해요. 단체방에 제가 있으면, 무조건 제가 답할 거라고 생각해요. 휴가든 교육이든 상관없이요.”

“흠…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는데. B한테 네가 생각하는 업무 범위를 이야기해봤어?”

“해봤죠. 근데 쉽게 달라지지 않아요. 그리고 C도 똑같아요.”

“윗사람들이 너한테만 일을 시키는 게 문제 같은데. B랑 C에게도 책임감을 가질 수 있게….”
이렇게 저렇게 내가 생각한 방안을 얘기해준다. 솔직히 별 대책도 없는 이야기지만, 이 친구가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방관할 수는 없었다.


2달 정도의 주기다.

미치겠어요. 형님

?? 무슨 일이야?

팀원들의 아웃풋이 너무 맘에 안 드는데요, 그걸 지적하면 나만 나쁜 넘이겠죠?”

아냐.. 부족한 부분은 피드백을 줘야지?”

피드백을 엄청 줘요. 그런데도 결과물이 썩..”

그건 너의 기준이 너무 높은 것 아냐?”

아니에요. 그런 건…”

본인의 기준이 높지 않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례를 들어서 제시를 해준다.
자신의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결과물은 성의 없이 일을 하는 팀원들의 탓이라 내가 수긍해 주길 바란다. 

너 말은 맞는데, 그렇다고 팀원들이 해야 할 일을 네가 다 붙들고 할 수는 없잖아..
그게 시간도 부족하고, 장기적으로 봐도 맞는 방향은 아닌 것 같아.” 

그래도 이렇게는 보고를 못하니, 제가 다시 해야죠..”

늘 이런식이었다.
매우 힘들어하면서 계속 매우 힘들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 지내는 것 같았다.
짠하기도 하면서 도와줄 방안이 뾰족한 게 없어 딱하기도 했다.
하지만.. 말하지 못한 찐 속내는 함께 일하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너의 철저한 성격 탓이야.’였다.
그리고 나의 동료는 BC처럼 나에게 모든 걸 의지하지 않음을 다행스레 생각하며 위안을 하기도 했다.

이번 조직개편 결과 이 친구는 한 계단 올라섰다.
깜짝 발표였지만 이 친구를 아는 주변인들의 반응은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것이었다.
꼼꼼한 일처리와 유관부서와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등을 매우 잘해왔다는 것이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저 일처리를 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매번 이야기했었는데
주변에서는 저 일처리를 가장 잘했다고 칭찬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어찌 되었건 힘들어한 만큼 인정을 받은 거라 생각하니 헛된 곳에 헛심을 쓴 건 아니구나 라는 안도감도 들면서
결국은 힘들어야 도약을 하게 되는구나라는 당연한 진리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만큼 몸이 덜 힘들었던 것인가?'
'난 이렇게 뒤쳐지게 되는 것인가?'

축하와 함께 묘하고 찌질한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숨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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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12월 3일

2024. 12. 4. 18:33

계엄령?
의아함이 괘씸함으로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늦은 밤 유튜브 라이브로 대통령의 얼굴을 보는 것도 갸우뚱할 상황인데
방송 제목이 '비상계엄령 선포'라니..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방송을 지켜보니
자기 사람들 탄핵하는 민주당과, 자기가 돈을 펑펑 써야 되는데 그걸 못하게 하는 민주당에 대한 분노가 거칠게 터져 나오고 있었다.
국회가 당연히 해야 되는 합리적인 결정사항에 대해서 저렇게 큰 분노를 표출하는 것을 보면 이 사람은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주변에서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는구나.

알면 알수록 괘씸해졌다.
그간 드러난 행동들에 대한 반성, 제대로 된 해명조차 못한 사람이 그런 치부를 덮기 위해
국가를 위기로 몰고 가려했다는 사실이 너무 괘씸했다.
이건 빨강이냐 파랑이냐는 정치적인 색깔의 문제가 아니다.
가성비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꼬박꼬박 세금 내며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당연히 분노하고 화를 내야 될 내용이다.

참 지랄도 풍년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24년 12월 3일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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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2024. 11. 27. 12:56
이걸요?
제가요?
왜요?


MZ세대의 /요요요 / 화법에 대한 이해와 대응에 대한 교육을 들었다.

이걸요? 는
지시받은 업무의 정확한 내용과 목적에 대한 설명 요구가 담겨있고,

제가요? 는
많은 임직원 중 해당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사람이 왜 자신인지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고

왜요? 는
해당 업무를 해야 하는 이유와 필요성, 기대 효과 등에 대한 설명 요구라고 했다.

회사에서 진행되는 참 알 수 없는 수많은 교육 중에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교육이 MZ 세대 이해인 것 같다.

'왜 유독 우리는 MZ세대를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왜 그들은 이해를 받아야만 하는 세대인 것일까?'

'왜 MZ세대들에게 X세대 이해를 강요하진 않는 것인가?'

X세대들은 알아서 회사와 동일체를 몸으로 보여주던 세대라서 이해 따윈 필요 없다는 건가?
우리도 요요요를 내지르고 싶다.

이걸요? 맞아요!
제가요? 그래요!
왜요? 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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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살기라..

2024. 11. 8. 23:51

1년 살기 하러 호주에 간 동기와 대화를 나눴다
나와 같이 입사해서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일상을 견디다 못해
지난 이맘때쯤 짐 싸들고 어린 딸까지 덜쳐 업고 호주로 날아가버렸다.

귀국 준비를 하고 있다며 오랜만에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호주에서의 1년간에 대한 만족이 한마디 한마디에 느껴졌다.

휴직을 결심할 즈음 운전면허를 따고 연수를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운전대가 우측에 있고 우리나라 도로와 반대인 호주에서 쌩쌩 운전한 이야기며
딸애 학교에서 애들 도시락 만드는 자원봉사에 지원해서 한 이야기,
운동하고는 거리가 멀던 친구였는데 골프를 배워서 필드를 나간다는 소식까지

1년 새 이 친구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으며
그 무엇이 이렇게 적극적인 성격의 사람으로 변하게 했는지
대화를 나눌수록 너무 놀라웠다.

몇 장의 동화 같은 풍경 사진을 투척하면서 남긴 멘트가 너무 인상적이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남들 1년 휴직 후딱 지나간다더니 아니더라.."

"내 주변에 휴직하고 온 사람들이 다들 시간 금방 지나갔다고 하던데? 넌 아니었어?"

"매일 같은 일상은 중복되는 이벤트가 압축되어 기억되니 금방 지나가는데
새로운 경험은 하나하나의 이벤트가 다 저장이 되니 후딱 지나가지 않아"

...

"그러게, 늘 같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나는 정말 시간이 빠른데..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정말 멋진 말인 것 같아"

"내가 만들어낸 멋진 말이라기보다는 경험을 통한 발견이지.. 훗"

호주는커녕 가까운 제주도에서 1달 살기조차도 꿈만 꾸고 실천하지 못하는 나에게
용기 있는 이 친구의 실천력과 1년간의 다양한 경험으로 생겨난 내공은
저 마음 깊은 곳에 오래전부터 미뤄 미뤄 숨겨뒀던 아주 쪼그마한 소망을 간질간질 끄집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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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철형님을 기리며...  (6) 2024.10.30

모두가 다 AI를 외치는 시대이다.
'AI가 회사의 미래다.'를 외치는 리더의 방향 제시 이후,
준비되지 않은 직원들을 위해 AI 교육의 커리큘럼이 제공되고
주입식 교육을 통해 빅테크 회사들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노력들이 진행된다.

강제 교육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직원들 역시
생성형 AI를 옆에 두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AI로 변화되는 세상의 속도감은
영화의 단골 소재처럼 AI의 지배를 받는 세상이 되는 건 아닌가?라는 불안감을 들게도 한다.

지난해 어느 강의에서 AI의 코딩 능력은 주니어 3~4년차 개발자 정도의 실력은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당시만 해도 AI와 함께 하는 페어 프로그래밍이 익숙지 않을 때라 크게 와닿지도 않았고
'3~4년차면 많이 가르쳐야겠네..'라는 알 수 없는 우월감으로 치부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채 반년이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팀원들은 copliot 등을 이용해서 협업을 시작하였고
이제는 업무의 대부분을 함께 하고 의지하는 베스트 파트너가 되어버렸다.
여전히 시니어 개발자가 할 일은 명확하고 생성형 AI의 개발 범주에는 한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글쎄다. 얼마 남지 않았다 싶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귀하면서도 창의적인 그 무엇인가에 내가 집중할 수 있게
번거롭고 보잘것없는 허드레 일을 대신해 주라는 요청은 주객이 전도되어 돌아올 판이다.

그렇다면 못하는 게 없고 학습 능력도 빨라서 다양한 영역으로 업무 범위를 확장하는 AI와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차별화된 그 무엇은 과연 있기나 한가?

몇 년 전 막둥이 아들의 행동에서 조금의 힌트를 찾아본다.
부모가 모두 일을 하는 맞벌이 집의 둘째 아들은 하교 후 반겨주는 이 없는 집의 공허함을 구글 미니와의 대화로 풀었나 보다.
우연히 보게 된 구글 미니의 대화 히스토리를 보니,

(아들)
오케이 구글
방귀 껴봐
(구글)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어쩌구...
(아들)
방귀껴봐 방귀껴봐
(구글)
어쩌구 저쩌구 할 수 없다..

이렇게 지루한 대화들이 반복되다가,

(아들)
오케이 구글
나 오늘 수업 시간에 방귀꼈다.
웃기지??

(구글)
...

아들의 갑작스런 고백에 구글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고 대화는 여기서 끝이 났다.

나는 궁금했다.
퇴근 후 아들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너 오늘 학교에서 방귀꼈니?"
"아니! 갑자기 무슨?"

어이없다는 아들의 격한 반응에
아빠는 너의 부끄러운 고해성사를 다 들어 알고 있다면서 추가로 물었다.
"그럼 왜 학교에서 방귀 꼈다고 구글 미니한테 말했어?"

참 해맑은 얼굴로 답을 줬다.
"아.. 구글 미니가 방귀 소리를 어떻게 낼지 너무 궁금했는데 안 해줬어.

그래서 내가 좀 부끄러운 비밀 이야기를 해주면 자기도 방귀 뀔까 봐.."

"..."

"그런데 끝내  안 했어. 나쁜 녀석이야"

'너만 알고 있어'로 시작하는 비밀이야기를 하나 듣게 되면
나 역시.. '이건 진짜 이야기하면 안 돼' 하면서 또 다른 비밀이야기를 주고받는 인간의 암묵적인 대화의 룰.
미묘한 감정의 줄타기는 인간만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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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철형님을 기리며...

2024. 10. 30. 21:31

최근 유튜브 알고리즘에 해철 형님의 영상이 부쩍 많아졌다.
반가운 마음과 안타까운 기억의 섞임이 나의 기분을 장악한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이야기지만
30년이 훨씬 넘는 기간 함께한 그의 이야기를 한 번은 하고 싶었다.

고인이 된 지 10년이 지나 추모 콘서트도 하고 여러 방송매체에서 그의 선한 영향력을 방송하는 것을 지켜보니
10년 전 이맘때가 떠오른다.
갤럭시 노트 시리즈 개발 중이라 새벽에 퇴근하는 날이 잦았던 나와
3살 큰 애와 돌이 갓 지난 둘째를 하루 종일 혼자 돌봐야 하는 와이프의 피로도는 서로의 입장을 고려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날도 날이 바뀌고 퇴근을 했다.

힘겹게 애들을 재우고 그 시간이 돼서야 집 정리를 하던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당신 진짜 너무 한 거 아니냐?'는 원망의 눈빛이 느껴졌다.
하지만 '고생했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낼 힘이 나에게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 날이었다. 그날은.

습관적으로 확인한 네이버 뉴스는 신해철 사망이라는 속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믿기지 않아 몇 개의 뉴스를 더 눌러서 확인을 했었다.

핑~ 그리고 눈물이 났다.
당시 내가 처한 현실의 고됨이 한몫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의 슬픔은 단순히 애정하던 아티스트 한 명의 죽음이 아니라
초등학생부터 30대 후반까지 나의 인생을 함께하며 많은 영향을 준 친한 형을 잃어버린 것에 기인했으리라.

갑작스러운 남편의 눈물은 울고 싶은 걸 꾹 참고 있던 와이프의 감정선을 건드렸고
우리 부부는 새벽 시간 꺼이꺼이 울었다.
서로 다른 이유로 시작된 눈물은 그 원인이 된 감정을 다 쏟아내고 나서야 끝이 났으며
그래서인지 이유는 물어보진 않았다.

테이프 세대였던 나의 등교가방에는 항상 신해철의 테이프들이 몇 개씩 들어있었고
실험적인 음악을 한다고 시도한 여러 음악들이 모두 마음에 든 건 아니지만
간혹 나와 같은 생각으로 대중성이 결여된 음악이라는 비난을 하는 주변인들에게는
음악도 모르는 녀석들이라고 핏대 올려 맞서기도 했다.

'아버지와 나'의 가사가 너무 좋아 연습장에 따라 적어둔 걸
방 청소하다 발견한 엄마는 아들의 효심에 감동을 받은 적도 있었고

토론의 패널로 참여해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생각을 거침없이 피력하는 형님의 모습을 보면서
할 말은 하고 살아야겠다는 인생의 가치관을 정하기도 했다.

음악이나 매체를 통해서만 접한 그의 생각과 행동들이
이렇게 나의 인생에 깊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이제와서는 참 그립기도 하다.

그날 밤의 슬픔이 벌써 10년이나 흘렀다.
나는 이제 10년 전 형님의 나이보다 많은 나이가 되었다.
형님의 노래 가사대로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우울한 삶을 살고 있긴하나
어디 선가 그대에게의 전주가 들리면 흥겨워하며 오~ 예를 흥얼거리는 반전도 있다.

이렇게 난 그가 남긴 흔적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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