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모습/2023년

관계

2023. 10. 17. 23:51

"나 이제 인간관계를 다시 생각해볼까 해

아무 말이나 나누는 친구와의 대화방에 무심코 던진 화두였다.

"어떻게?

"내가 내일 이 회사를 나간다고 하자.. 과연 이 회사에서 만난 인연 중에 연락을 하고 지낼 사람이 누가 있을까?

"두루두루 사람들하고 잘 지내는 오빠가 그런 얘기를 하다니 의외군

"넌 있을 것 같아?

"나는 진작에 연락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결론을 낸 상태지..

"...


'부질없다'는 이럴 때 사용하기에는 딱 어울리는 단어이다.

회사에서 받는 업무적인 스트레스는 내가 받는 월급만큼 받고 있다.

회사에서 받는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 이건 딱히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퇴근을 해도 나를 따라다닌다.

즉, 회사 생활의 무료봉사다. 이러한 무료봉사는 퇴사를 해야 끝나겠지.

책상 위 노트를 정리하다  누가 볼까 봐 흑색 볼펜으로 동글동글 덧칠로 지워버린 문구가 보였다.

나는 이미 너를 정리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과 단 둘이 있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정을 떼려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당시 누구에게 이렇게 분노를 했던 것일까?

그 분노가 쉽게 사그라들진 않았을 텐데

난 요즘 얼마나 큰 가면을 쓰고 회사에 앉아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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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근황

2023. 10. 17. 23:26

지난주 생일 덕에 지인들의 연락을 꽤 받았다.

정작 나 자신은 무덤덤해진 생일인데 챙겨주는 고마움에 그간 나의 무심함을 반성하기도 했다.

"가을인데 괜찮아?"

3년 넘게 만나지 못한 입사 동기가 생일 축하 겸 안부를 물어왔다.

가을.. 그래..난 참 유난히 가을에 힘겨워했었지..

옷장에서 애정하는 니트를 꺼내는 순간부터 알 수 없는 묘한 몽글몽글한 감정에, 

별일 아닌 글귀에도 코끝 찡해지고..

세상 가장 슬픈 시련을 당한 비운의 남자인냥 우울한 표정을 했더랬지.

"에휴..이제 늙어서 가을 탈 기운도 없어.."

더이상 계절에 따라 기분 조절도 못하는 그런 어린 애가 아니라는 것을 돌려서 말하고 싶었나보다...

실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노하우가 하나 더 생겼을 뿐..

난 가을이라는 계절의 꼭대기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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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 대한 생각

2023. 2. 6. 00:45

어머니께서 오늘 새벽에 별세하셨습니다.
가시는 길 위로와 명복 빌어주시기 바랍니다.
빈소: XXX 장례식장

오랜만에 연락하는데 부고라 미안하다.
그리고 대학 동기들에게 연락 좀 부탁할게....

주말 평온한 아침 연달아 울리는 카톡 소리에 눈을 떠보니 대학 동기였다.
대학 시절 어울려 다니던 8명 남짓 친구들 중 한 명이며,
마지막으로 본 게 그 8명 중 가장 늦게 결혼한 친구의 피로연이었으니
한 십여 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슬픈 소식에 위로를 전하고 나머지 친구들에게 연락은 책임지겠노라 답장을 했다.
어머니를 잃은 친구가 받을 슬픔의 무게가 느껴져 오늘 중 일찍 조문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근데 이 친구가 왜 나한테 대표로 연락을 해서 부탁을 할까? 8명 무리 중에서도 이 친구의 절친은 내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여하튼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려 카톡을 쭈욱 내려보는데 만들어진 단체방이 없다.

그나마 최근까지 연락을 주고받은 친구에게 혹시 동기들 단톡방 있냐고 물어보니
그 친구 역시 없다고 한다.
하기야 나머지 친구들도 십 년 전 그 노총각 친구 결혼식 참석 이후로 못 보다가
울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경황없는 채 만난 게 마지막이고, 그것도 벌써 2년이 넘었으니..

참 친했던 친구들이었는데,
이 연락처가 그 친구가 맞는지 프로필 사진까지 눌러가며 확인을 해야만 했다.
상을 치르고 있을 친구 녀석을 빼고 7명을 한 채팅방에 다 모아놓고

안녕.
내가 보낸 안녕 옆 읽음 숫자가 6, 5, 4, 3 줄어들다가 2 정도 되었을 때
평택서 살고 있는 친구가
안녕하슈~라고 대답을 해준다.

XX 어머님이 돌아가셨어.
빈소는 XX 장례식장이야..

이렇게만 마무리하기에는 좀 뻘쭘해서,
친구 위로해 주자라는 말을 덧붙였다.
위로해 주자는 나의 마지막 말 옆으로 6, 5, 4, 3... 숫자는 줄어들지만 대답은 없다.

오랜 시간의 공백은 우리의 긴 인연을 지워버린 것일까?
안녕하슈~라고 말을 해준 평택 사는 친구가
밤늦게 내려갈 테니 같이 가자고 답을 준다.
그리고 한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방을 퇴장해 버렸다.

졸업하고 사회생활 시작하면서 친구들이 한 명씩 결혼할 때면 다 같이 모여서 축하도 해주고
명절 전후로 타지 생활하는 친구들 모이면 술도 한잔씩 했던 것 같은데
결혼하고 애들 키우고, 그 애들이 벌써 고등학생인 친구도 있고
회사 생활 20년씩 하면서 이제 슬슬 이후를 생각할 나이도 되었으며,
하루하루 맞닥뜨리는 현실을 헤쳐 나가는데 힘을 쏟다 보니 우리의 과거는 챙길 여력이 없나 보다.

20대의 즐거웠던 많은 기억을 함께한 인연이었음에도
이렇게 조사 있을 때 연락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그 소식을 듣는 것에 부담을 가지는 그런 사이가 되어 버렸구나.

평택서 온 친구를 만나 조문을 하고
상을 치르고 있는 친구와 세 명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어머님 병환에 대한 이야기, 애들 몇 학년이냐는 이야기, 요즘 회사 생활 괜찮냐는 물음을 하고 나니
대화가 끊겨버렸다.

이제는 흰머리가 어색하지 않은, 퉁퉁한 부장님 뱃살을 가진 친구들과의 만남이 이렇게 어색하고 불편하다니.
술이라도 마셨다면 20대 학창 시절의 기억을 되뇌며 그 시절 친구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평택으로 다시 올라가야 하는 친구가 옷을 챙겨든다.
지금 출발해도 12시가 넘어야 도착할 것 같다는 걱정으로 출발을 독촉하며 나도 슬며시 일어섰다.

빈소를 늦게 까지 지키며 친구의 슬픔을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나는 여기에 와서 최소한의 의무는 다 했다고 나를 변호하는 게 앞선다.

이렇게 변해가는 우리의 인연에 대한 아쉬움, 안타까움?
현재 겨우 겨우 이어져 오고 있는 우리 만남의 이유인 경조사도 그 약발이 다 할 날이 오겠지.
한 번씩 만나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우리도 20대 청춘인 시절이 있었다는 걸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들이 사라진다는 게 어떤 기분일지.
의외로 너무 쉽게 그리고 자연스레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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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해

2023. 2. 5. 22:55

파워풀한 액션, 또는 범죄 스릴러,
하정우나 마동석이 주연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것이 한국 영상물에 대한 최근 나의 취향.

사랑의 이해..
넷플릭스 상위에 있는 걸 알면서도 '남주 유연석의 달달함은 나의 취향이 아냐' 하면서 외면했던 한국 드라마였다.
이번 입원기간 동안 혼자 남겨진 병실에서의 외로움을 유연석의 달달함으로 풀어보고자... 는 개뿔 아니고,
웬만한 것은 다 보는 바람에 진짜 볼 게 없어서 보기 시작한 드라마였다.

1~ 12회를 보면서 느낀 점은
'도대체 왜! 상수는 고민을 하는 것일까? 이 선택이 고민을 해야 될 내용인가?'
'결혼을 과연 사랑만으로? 어린 녀석 쯧쯧쯧..'

40 후반의 아저씨가 보기에는
상수의 흔들리는 감정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한 답답함, 그리고 우리 미경 대한 안쓰러움.
답답하네 답답해를 중얼거리며 미경이를 응원하던 나는 드라마에 푹 빠져버리게 되었다.

상수에게 지극 정성인 사랑을 보여주는 미경,
그 미경을 두고 수영을 바라보는 상수,
그리고 그 상수를 사랑하지만 다른 결정을 하는 수영.
이러한 관계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나,
그리고 '나 너무 속물이 되었구나'라는 찜찜함.
수영에 대한 상수의 저 마음. 나는 과연 없었을까? 뜬금없는 30년 전 기억 소환까지..

13회, 14회
존재감 없던 경필이 보여준 옛 연인 미경에 대한 찐 사랑.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이라 마음의 울림이 몇 배는 더했으며,
또다시 과몰입한 나는 경필처럼 나를 희생하며 지켜줬던 사랑이 있었던가라는 추억 놀이까지.

이제 두 편 남았다.
내가 응원하던 미경이는 드디어 현실을 받아들였으며,
미경이를 아프게 한 상수는 
또다시 사라져 버린 수영이 때문에 한 동안 아플 듯하고.

남은 2회의 완결을 기다리지 못한 나는 
결국 책을 구매하고, 
책 제목에 친절하게 표시된 두 이해를 보면서
나의 속물적인 마음을 작가도 염두에 뒀구나 할 수 있었다.  

사랑이란 서로를 가장 깊이 이해하는 관계이고 싶지만
누구보다 가장 치밀하게 서로의 이해관계를 따져 보게 되는 아이러니.

이해(理解)와 이해(利害)
이해 1 (理解)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이해 2 (利害)
  이익과 손해를 아울러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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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낭 안녕..

2023. 2. 1. 17:22

담낭에 돌이 있다는 건강검진 결과를 처음 받은 게 십 년 전
그 후로 매년 그 돌의 개수는 늘어났고,
2년 전부터는 담낭 제거를 진지하게 권하기 시작했다.
작년 검진에서는 방치하면 암이..어쩌구 무서운 이야기까지 한다.
아...네네... 대충 답을 하며 배에 잔뜩 뭍은 젤을 닦아 내는 내게 한마디를 덧 붙인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수술해야 회복이 빠릅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약간 움찔했다.

소화력이 떨어지는 건 맞지만 평소에 통증도 없는데 수술을 해야 할까요?
네. 지금도 큰 역할을 못하고 있고 방치하면 나중에 더 골치 아파질 수 있고
담낭암은 예후도 안 좋아요 통상적으로.
쐐기였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병원 예약을 했다.
구멍을 한 개 뚫고도 처리할 수 있다는 병원이 요즘 꽤 핫해보였지만,
내가 비키니 입을 것도 아니고, 한 개보단 여러 군데 뚫어서 의사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안전하겠지 싶어 3개 뚫는다는 의사를 선택했다.

예약을 하고 수술날이 다가올 수록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너무나 흔한 수술이라고는 하나...
"만약에"라는 거기에 내가 포함되면 어쩌지?
수술 중이라는 붉은 표시등을 보며 수술실 앞을 왔다 갔다, 초조하게 기다려봤던 몇 건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수술로 인해 받게 될, 그 정도를 알 수 없는 통증과 그것으로 인한 불안감보다는
지켜볼 가족들에 대한 걱정들로 마음이 착잡했다.

수술은 잘 끝이 났다.
마취 깨면서부터 강하게 전달된 통증은
무언가가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걸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장 빨리 알려주는 신호였으리라.
수술 이틀째부터는 살만했다.
다만 몇 십년째 루틴이 되어버린 모닝커피, 카페인의 부재는 지독한 두통을 유발했다.
배의 뚫린 3방의 구멍 통증도 잊을 만큼 강한 두통은 진통제로도 막지 못하고
저녁 늦게 허용된 아메리카노 한모금이 온몸에 퍼질 때까지 날 힘들게 했다.

3일째.
흰죽이 허용되었다. 장기 하나가 없어져서 조금 걱정은 했지만 잘 넘어갔다.
그리고 모닝커피의 행복한 루틴을 다시 찾아왔다.
담낭이 제거됨에 함께 긴장해 쪼그라든 다른 장기들의 긴장 완화를 위해 복도를 계속 걸었다.
십 년째 걱정했던 담낭의 돌, 그것과의 자연스러운 안녕이 진행되고 있었다.

4일째.
밥이 허용되었다.
죽보다는 쉽지가 않았다. 장기가 격렬히 요동을 치고 거부감을 보였다.
원래 아침은 먹지 않았지..싶어 몇 술 뜨고 정리했다.
퇴원 준비를 했다.
퇴원 전 마지막 소독의 시간.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내 배를 쳐다봤다.
두 구멍은 스테이플러 3방, 오른쪽 옆구리 쪽은 스테이플러 2방으로 살을 잡고 있었다.
요즘은 실로 꿰매는게 아니라 스테이플러로 고정을 하나보다.
좀 섬뜩했다. 저 스테이플러 심은 어떻게 다시 뽑아내지?
제가 퇴원하고 조심할 음식이 있을까요?
아뇨.. 그냥 다 드시면 됩니다. 설사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적응하는 겁니다.
너무나 쿨한 의사의 마지막 멘트를 듣고 퇴원을 했다.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참 큰일을 겪은 너무나 긴 한 주였다.
하루하루 안부를 물어보는 이에 대한 고마움.
한 번 정도는 안부를 물어볼 법도 한데 연락 한통 없는 이에 대한 서운함.
이 나이 먹고도 사람에 대한 기대를 하다니....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

내 몸에서 빠져버린 담낭의 크기 만큼,
딱 그만큼의 복잡한 감정들이 그 자리를 메꿔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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