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생일 후기
나이 셈이 달라지는 바람에 정확한 나이도 모르고 산다.
나같이 자기 나이도 모른 채 사는 사람이 많은지
네이버에서는 생일과 오늘 날짜를 입력하면 정확한 나이를 알려주는 서비스도 제공을 한다.
연 나이, 만 나이 48세.
어제 날짜로 계산하니 만 나이가 47세.
아직 50은 아니었구나.
숫자 50이 가진 거대함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아직 2년이 남았다는 데 위안을 삼는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항상 생일날이면 연차를 냈다.
꽤 길게 이어지고 있는 이러한 루틴은 큰 계기나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그러고 싶었던 것 같다.
오롯이 날 위한 하루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매년 나름의 규칙을 더해갔다.
오전 9시 병원 오픈하자마자 들어가서 스케일링을 받고,
극장에 가서 가장 인기 있는 영화를 혼자서 조용히 즐긴다.
서점에 가서 신간들을 뒤적이거나
차를 타고 목적지도 없는 드라이브를 즐기기도 했다.
작년에는 큰 강을 찾아서 조용히 낚시대를 드리우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다이소에 들러 펜과 공책을 여러 개 구입을 했었다.
40대 후반의 아저씨가 마음먹고 낸 휴가의 하루가 너무 소박하고 어찌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하나,
이러한 평범한 하루조차도 일상에서는 쉽게 즐길 수 없기에
나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라고 정당화한 하루의 일탈은 그만큼 소중했으며,
나의 이러한 일탈을 부러워하며 따라하는 동료들도 생겨났다.
오늘은 출근을 했다.
나와 오래 일을 한 동료들이 의아해하며 생일인데 왜 휴가 사용하지 않았냐고 궁금해했다.
이번 달 공휴일이 너무 많아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출근했다며 회사로 그 원인을 돌리며 자연스레
내년 생일에는 다시 쉴 거라는 여지를 남겨뒀다.
사실 나는 이번 달 휴무일에도 출근을 하면서 일을 남기지 않았고
며칠 후 있을 나의 일탈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느 아침과 똑같았다.
아침에 애들 아침 식사를 챙기고 등교를 도와주고 출근 준비를 했다.
둘째 녀석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조금 잔소리를 하고 조금 더 서둘렀다는 것 빼곤.
평소보다 몇 분 가량 늦었는데 회사 가는 길이 쉽지가 않았다.
고속도로 진입로부터 꽉 막힌 차를 보며 답답함을 느끼며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고객님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몇 통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머리가 잠시 멈췄던 것 같다. 그리고는 쭉 늘어선 차들과 함께 고속도로에 올라서고 있었다.
50이라는 숫자의 거대한 이동은 기억의 영역까지 침범한 건가?
이 나이에 생일이 대수냐? 라는 표현은 생일 축하에 대한 민망한 답변으로만 사용하는지 알았는데
진짜 대수가 아닌 일이 되어버렸다.
아쉽다.
눈앞에서 놓쳐버린 물고기가 더 아쉽 듯
합법적으로 방탕할 수 있는 소중한 일탈을 놓쳐버린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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