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철형님을 기리며...
최근 유튜브 알고리즘에 해철 형님의 영상이 부쩍 많아졌다.
반가운 마음과 안타까운 기억의 섞임이 나의 기분을 장악한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이야기지만
30년이 훨씬 넘는 기간 함께한 그의 이야기를 한 번은 하고 싶었다.
고인이 된 지 10년이 지나 추모 콘서트도 하고 여러 방송매체에서 그의 선한 영향력을 방송하는 것을 지켜보니
10년 전 이맘때가 떠오른다.
갤럭시 노트 시리즈 개발 중이라 새벽에 퇴근하는 날이 잦았던 나와
3살 큰 애와 돌이 갓 지난 둘째를 하루 종일 혼자 돌봐야 하는 와이프의 피로도는 서로의 입장을 고려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날도 날이 바뀌고 퇴근을 했다.
힘겹게 애들을 재우고 그 시간이 돼서야 집 정리를 하던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당신 진짜 너무 한 거 아니냐?'는 원망의 눈빛이 느껴졌다.
하지만 '고생했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낼 힘이 나에게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 날이었다. 그날은.
습관적으로 확인한 네이버 뉴스는 신해철 사망이라는 속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믿기지 않아 몇 개의 뉴스를 더 눌러서 확인을 했었다.
핑~ 그리고 눈물이 났다.
당시 내가 처한 현실의 고됨이 한몫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의 슬픔은 단순히 애정하던 아티스트 한 명의 죽음이 아니라
초등학생부터 30대 후반까지 나의 인생을 함께하며 많은 영향을 준 친한 형을 잃어버린 것에 기인했으리라.
갑작스러운 남편의 눈물은 울고 싶은 걸 꾹 참고 있던 와이프의 감정선을 건드렸고
우리 부부는 새벽 시간 꺼이꺼이 울었다.
서로 다른 이유로 시작된 눈물은 그 원인이 된 감정을 다 쏟아내고 나서야 끝이 났으며
그래서인지 이유는 물어보진 않았다.
테이프 세대였던 나의 등교가방에는 항상 신해철의 테이프들이 몇 개씩 들어있었고
실험적인 음악을 한다고 시도한 여러 음악들이 모두 마음에 든 건 아니지만
간혹 나와 같은 생각으로 대중성이 결여된 음악이라는 비난을 하는 주변인들에게는
음악도 모르는 녀석들이라고 핏대 올려 맞서기도 했다.
'아버지와 나'의 가사가 너무 좋아 연습장에 따라 적어둔 걸
방 청소하다 발견한 엄마는 아들의 효심에 감동을 받은 적도 있었고
토론의 패널로 참여해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생각을 거침없이 피력하는 형님의 모습을 보면서
할 말은 하고 살아야겠다는 인생의 가치관을 정하기도 했다.
음악이나 매체를 통해서만 접한 그의 생각과 행동들이
이렇게 나의 인생에 깊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이제와서는 참 그립기도 하다.
그날 밤의 슬픔이 벌써 10년이나 흘렀다.
나는 이제 10년 전 형님의 나이보다 많은 나이가 되었다.
형님의 노래 가사대로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우울한 삶을 살고 있긴하나
어디 선가 그대에게의 전주가 들리면 흥겨워하며 오~ 예를 흥얼거리는 반전도 있다.
이렇게 난 그가 남긴 흔적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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