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씨 오늘 안 나왔어요?”
출퇴근이 자유로운 회사지만, 대부분 11시 전엔 다들 온다.
업무 미팅이 있어 고개를 돌려봤는데, 자리에 없다.
출근 전인가 싶어 근태 내역을 보니 오늘 연차였다.

연차는 자유롭게 쓰자는 분위기라, 팀원들도 별다른 눈치 없이 결재를 올리고 휴가를 쓴다.
연차 결재는 내가 한다.
하지만 내가 결재한 연차를 달력에 표시해놓지 않으면, 당일에 그게 연차였다는 걸 잊기 쉽다.

퇴근하면서 “내일 연차예요” 한마디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순간 아쉬운 마음이 들다가— 혹시 이 기대 자체가 꼰대 같은 건가? 싶다.
이런 게 갑질의 못된 심뽀라고 스스로 반성을 한다.

요즘처럼 바쁠 때 연차 쓰는 게 눈치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눈치 주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내 지친 얼굴에 묻은 감정의 흔적을
그는 읽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연차 쓸 때 눈치를 본다.
내 연차지만 회사 스케줄 고려하고,
상사 눈치 보고, 동료들 일정도 확인한다.
결국 연말이 되어야 남은 연차를
재택 근무겸 해서 겨우 소진한다.
그때는 그것이 연차인지,
사용해야 하는 의무인지조차 헷갈린다.

어릴 적 아버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하셨다.
몸이 아파도, 피곤해 보여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서셨다.
그 모습은 말없이 내게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아버지의 성실함에서 비롯된 '회사보다 소중한 건 없다'는 믿음은
나의 회사생활 스무 해 동안 날 조여왔다.
그게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걸 최근에야 생각하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주변 동료들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예전엔 저들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삶은 무게 중심이 잘 잡혀 있다.
오히려 나 혼자
어긋난 충성심에 갇혀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충성이라 믿었던 건, 누군가의 가스라이팅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 출근한 ㅇㅇ씨는
초등학생 아들 참관 수업에 다녀왔다며,
그 자리에서 아들의 엉뚱한 질문에 당황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제야 ‘아, 그게 연차 이유였구나’ 싶었다.

나는 아들 둘을 키우면서도 한 번도 참관 수업을 가본 적이 없다.
문득 둘째에게 물었다.
“참관 수업 같은 건 안 해?”
“하는데요.”
“근데 왜 아빠한테 한 번도 말 안 했어?”
“아빠는 회사 가야 하니까요. 그냥 말 안 했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아이의 말에서 짠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문득,
나도 모르게 이 아이에게도
회사란 몸보다, 가족보다 더 중요한 곳이라고 가르쳐버린 건 아닐까 라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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