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은 항상 옳다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이불킥을 하게 만드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나, 6학년이었나. 아무튼 그즈음이었다.
그 시절에는 ‘신체검사’라는 명목 아래 키, 몸무게, 그리고 가슴둘레까지 재는 대단히 굴욕적인 행사가 있었다.
남자애들은 대부분 흰 런닝 한 장 걸친 채로 측정대에 올랐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남자애들의 검사가 끝나고 여자애들의 차례가 되었을 때였다.
그때 반에서 키가 가장 컸던 여자애가 대뜸 말했다.
"남자애들은 교실 밖으로 나가줘"
순간, 내 머릿속에 "???"가 떠올랐다.
왜 우리가 나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기엔 너무 어렸고, 무엇보다 추운 복도로 쫓겨나야 한다는 게 부당하게 느껴졌다.
'이건 명백한 불공정 아닌가?'
불합리한 요구는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외쳤다.
"우리가 검사받을 때 너희는 교실에 있었잖아! 그런데 왜 우리는 나가야 해?"
당시 반장이었던 내 한마디에 남자애들도 웅성거리며 동조하기 시작했다.
교실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선생님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이동진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는 건, 그때의 충격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키 크고, 얼굴도 하얗고 잘생겼던 부반장.
내가 반장이라는 것 말고는 모든 면에서 우월해 보였던 친구.
그 친구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나갈게."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문을 열고 나갔다.
남자애들도 하나둘 상의를 주섬주섬 챙겨 입으며 따라 나갔다.
여자애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패배감이라고 하기엔 뭔가 달랐다.
단순히 부끄럽다고 하기엔 더 복잡한 감정이었다. 그저, 찌질한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이동진과 나를 비교하는 순간마다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좀 더 넓게 보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깨닫기 시작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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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사무실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팀장님의 질책 섞인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이 답변, 대체 누가 올린 거예요?"
고객 게시판에 올라간 답변이 문제였다.
사실, 개발팀은 이미 해당 이슈를 알고 있었다.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도 인정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 숙제처럼 미뤄지고 있던 문제였다.
그런데 고객이 불만을 제기했다.
정상적인 대응은 이랬어야 했다.
"네, 고객님.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언제까지 수정하여 새로운 SW를 배포하겠습니다."
하지만 대응 담당자는 이렇게 답변을 남겼다.
"좀 더 정확한 이슈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문제 영상을 촬영해 주세요."
고객은 빡쳤다.
"옛다, 비교 영상!"
경쟁사 제품과의 차이를 보여주는 영상을 올려버리며, 수동적인 대응을 비난하는 글까지 남겼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대외 담당자는 보통 개발팀에 VOC를 공유하며 "이거 어떻게 답변하면 될까요?"라고 묻는다.
그럼 개발팀은 "로그 좀 첨부해 달라고 해 주세요"라든가,
"이건 이미 수정된 거라 곧 패치 나가요" 같은 답을 준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과정 없이 대응 담당자가 단독으로 답변을 올려버린 것이다.
왜?
개발팀이 늘 바쁘니까.
좀 더 정확한 정보를 확보한 후 전달해야겠다는 선의의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꼬여버리니, 결국 질책받을 사람만 생겼다.
어떻게 보고해야 할까.
사실대로 말하면 담당자의 실수를 지적하는 꼴이 되고,
그렇다고 덮어둘 수도 없고...
옆자리 동료가 내게 의견을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나는 고민했다.
"음... 당사자가 직접 팀장님께 보고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괜히 우리가 끼면, 그 사람을 꼰지르는 것 같기도 하고, 이후 관계도 껄끄러워질 것 같고..."
"그렇죠? 난감하네요."
내 대답에서 회피하려는 기색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때, 옆자리 동료가 불쑥 말했다.
"제가 팀장님께 보고할게요.
누구의 잘못을 따지려는 게 아니라,
이번에는 조금 미흡했지만 앞으로 더 신중히 대응하겠다고 하면 될 것 같아요."
그 순간, 띵— 했다.
초등학교 시절의 그 찌질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처럼, 이번에도 나는 상대방 입장은 생각지 않고 나만 생각한 것이다.
어쩌면 인생은 크고 작은 ‘이동진’들과 마주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어떤 순간엔 내가 반장처럼 쪼잔하게 굴고,
또 어떤 순간엔 이동진처럼 쿨하게 넘길 수도 있는 거다.
이 나이를 먹고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게 있나 보다.
후회할 일을 줄이며 나아가야 하는데,
결국 또 하나의 이불킥을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