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기분
입사 때부터 함께한 동료가 있다.
회사에서 만난 인연치고는 꽤 오래, 그리고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는 두 살 어린 동생이다.
이 관계가 이렇게 지속될 수 있었던 건, ‘형님, 형님’ 하며 변함없이 따르는 이 친구의 노력도 크지만, 무엇보다 회사 생활에서 생긴 스트레스와 고민을 종종 나눌 수 있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이 친구의 가장 큰 고민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미치겠어요, 형님.”
메신저로 그렇게 말을 걸어오면, 나는 ‘아, 또 한계에 다다랐구나’ 싶어 대화를 받아준다.
“왜? 무슨 일이야?”
“A 부서 담당자가 단체 채팅방에서 이러쿵저러쿵 물어보는데, 그건 B가 답해야 하잖아요.”
“그렇지, 그게 B의 역할이지.”
“근데 안 해요. 제가 해요. 단체방에 제가 있으면, 무조건 제가 답할 거라고 생각해요. 휴가든 교육이든 상관없이요.”
“흠…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는데. B한테 네가 생각하는 업무 범위를 이야기해봤어?”
“해봤죠. 근데 쉽게 달라지지 않아요. 그리고 C도 똑같아요.”
“윗사람들이 너한테만 일을 시키는 게 문제 같은데. B랑 C에게도 책임감을 가질 수 있게….”
이렇게 저렇게 내가 생각한 방안을 얘기해준다. 솔직히 별 대책도 없는 이야기지만, 이 친구가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방관할 수는 없었다.
2달 정도의 주기다.
“미치겠어요. 형님”
“왜?? 무슨 일이야?”
“팀원들의 아웃풋이 너무 맘에 안 드는데요, 그걸 지적하면 나만 나쁜 넘이겠죠?”
“아냐.. 부족한 부분은 피드백을 줘야지?”
“피드백을 엄청 줘요. 그런데도 결과물이 썩..”
“그건 너의 기준이 너무 높은 것 아냐?”
“아니에요. 그런 건…”
본인의 기준이 높지 않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례를 들어서 제시를 해준다.
자신의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결과물은 성의 없이 일을 하는 팀원들의 탓이라 내가 수긍해 주길 바란다.
“너 말은 맞는데, 그렇다고 팀원들이 해야 할 일을 네가 다 붙들고 할 수는 없잖아..
그게 시간도 부족하고, 장기적으로 봐도 맞는 방향은 아닌 것 같아.”
“그래도 이렇게는 보고를 못하니, 제가 다시 해야죠..”
늘 이런식이었다.
매우 힘들어하면서 계속 매우 힘들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 지내는 것 같았다.
짠하기도 하면서 도와줄 방안이 뾰족한 게 없어 딱하기도 했다.
하지만.. 말하지 못한 찐 속내는 ‘함께 일하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너의 철저한 성격 탓이야.’였다.
그리고 나의 동료는 B와 C처럼 나에게 모든 걸 의지하지 않음을 다행스레 생각하며 위안을 하기도 했다.
이번 조직개편 결과 이 친구는 한 계단 올라섰다.
깜짝 발표였지만 이 친구를 아는 주변인들의 반응은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것이었다.
꼼꼼한 일처리와 유관부서와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등을 매우 잘해왔다는 것이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저 일처리를 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매번 이야기했었는데…
주변에서는 저 일처리를 가장 잘했다고 칭찬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어찌 되었건 힘들어한 만큼 인정을 받은 거라 생각하니 헛된 곳에 헛심을 쓴 건 아니구나 라는 안도감도 들면서
결국은 힘들어야 도약을 하게 되는구나라는 당연한 진리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만큼 몸이 덜 힘들었던 것인가?'
'난 이렇게 뒤쳐지게 되는 것인가?'
축하와 함께 묘하고 찌질한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숨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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