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기분

2024. 12. 5. 01:21

입사 때부터 함께한 동료가 있다.
회사에서 만난 인연치고는 꽤 오래, 그리고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는 두 살 어린 동생이다.

이 관계가 이렇게 지속될 수 있었던 건, ‘형님, 형님’ 하며 변함없이 따르는 이 친구의 노력도 크지만, 무엇보다 회사 생활에서 생긴 스트레스와 고민을 종종 나눌 수 있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이 친구의 가장 큰 고민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미치겠어요, 형님.”
메신저로 그렇게 말을 걸어오면, 나는 ‘아, 또 한계에 다다랐구나’ 싶어 대화를 받아준다.

“왜? 무슨 일이야?”

“A 부서 담당자가 단체 채팅방에서 이러쿵저러쿵 물어보는데, 그건 B가 답해야 하잖아요.”

“그렇지, 그게 B의 역할이지.”

“근데 안 해요. 제가 해요. 단체방에 제가 있으면, 무조건 제가 답할 거라고 생각해요. 휴가든 교육이든 상관없이요.”

“흠…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는데. B한테 네가 생각하는 업무 범위를 이야기해봤어?”

“해봤죠. 근데 쉽게 달라지지 않아요. 그리고 C도 똑같아요.”

“윗사람들이 너한테만 일을 시키는 게 문제 같은데. B랑 C에게도 책임감을 가질 수 있게….”
이렇게 저렇게 내가 생각한 방안을 얘기해준다. 솔직히 별 대책도 없는 이야기지만, 이 친구가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방관할 수는 없었다.


2달 정도의 주기다.

미치겠어요. 형님

?? 무슨 일이야?

팀원들의 아웃풋이 너무 맘에 안 드는데요, 그걸 지적하면 나만 나쁜 넘이겠죠?”

아냐.. 부족한 부분은 피드백을 줘야지?”

피드백을 엄청 줘요. 그런데도 결과물이 썩..”

그건 너의 기준이 너무 높은 것 아냐?”

아니에요. 그런 건…”

본인의 기준이 높지 않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례를 들어서 제시를 해준다.
자신의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결과물은 성의 없이 일을 하는 팀원들의 탓이라 내가 수긍해 주길 바란다. 

너 말은 맞는데, 그렇다고 팀원들이 해야 할 일을 네가 다 붙들고 할 수는 없잖아..
그게 시간도 부족하고, 장기적으로 봐도 맞는 방향은 아닌 것 같아.” 

그래도 이렇게는 보고를 못하니, 제가 다시 해야죠..”

늘 이런식이었다.
매우 힘들어하면서 계속 매우 힘들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 지내는 것 같았다.
짠하기도 하면서 도와줄 방안이 뾰족한 게 없어 딱하기도 했다.
하지만.. 말하지 못한 찐 속내는 함께 일하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너의 철저한 성격 탓이야.’였다.
그리고 나의 동료는 BC처럼 나에게 모든 걸 의지하지 않음을 다행스레 생각하며 위안을 하기도 했다.

이번 조직개편 결과 이 친구는 한 계단 올라섰다.
깜짝 발표였지만 이 친구를 아는 주변인들의 반응은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것이었다.
꼼꼼한 일처리와 유관부서와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등을 매우 잘해왔다는 것이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저 일처리를 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매번 이야기했었는데
주변에서는 저 일처리를 가장 잘했다고 칭찬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어찌 되었건 힘들어한 만큼 인정을 받은 거라 생각하니 헛된 곳에 헛심을 쓴 건 아니구나 라는 안도감도 들면서
결국은 힘들어야 도약을 하게 되는구나라는 당연한 진리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만큼 몸이 덜 힘들었던 것인가?'
'난 이렇게 뒤쳐지게 되는 것인가?'

축하와 함께 묘하고 찌질한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숨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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