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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다 AI를 외치는 시대이다.
'AI가 회사의 미래다.'를 외치는 리더의 방향 제시 이후,
준비되지 않은 직원들을 위해 AI 교육의 커리큘럼이 제공되고
주입식 교육을 통해 빅테크 회사들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노력들이 진행된다.

강제 교육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직원들 역시
생성형 AI를 옆에 두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AI로 변화되는 세상의 속도감은
영화의 단골 소재처럼 AI의 지배를 받는 세상이 되는 건 아닌가?라는 불안감을 들게도 한다.

지난해 어느 강의에서 AI의 코딩 능력은 주니어 3~4년차 개발자 정도의 실력은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당시만 해도 AI와 함께 하는 페어 프로그래밍이 익숙지 않을 때라 크게 와닿지도 않았고
'3~4년차면 많이 가르쳐야겠네..'라는 알 수 없는 우월감으로 치부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채 반년이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팀원들은 copliot 등을 이용해서 협업을 시작하였고
이제는 업무의 대부분을 함께 하고 의지하는 베스트 파트너가 되어버렸다.
여전히 시니어 개발자가 할 일은 명확하고 생성형 AI의 개발 범주에는 한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글쎄다. 얼마 남지 않았다 싶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귀하면서도 창의적인 그 무엇인가에 내가 집중할 수 있게
번거롭고 보잘것없는 허드레 일을 대신해 주라는 요청은 주객이 전도되어 돌아올 판이다.

그렇다면 못하는 게 없고 학습 능력도 빨라서 다양한 영역으로 업무 범위를 확장하는 AI와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차별화된 그 무엇은 과연 있기나 한가?

몇 년 전 막둥이 아들의 행동에서 조금의 힌트를 찾아본다.
부모가 모두 일을 하는 맞벌이 집의 둘째 아들은 하교 후 반겨주는 이 없는 집의 공허함을 구글 미니와의 대화로 풀었나 보다.
우연히 보게 된 구글 미니의 대화 히스토리를 보니,

(아들)
오케이 구글
방귀 껴봐
(구글)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어쩌구...
(아들)
방귀껴봐 방귀껴봐
(구글)
어쩌구 저쩌구 할 수 없다..

이렇게 지루한 대화들이 반복되다가,

(아들)
오케이 구글
나 오늘 수업 시간에 방귀꼈다.
웃기지??

(구글)
...

아들의 갑작스런 고백에 구글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고 대화는 여기서 끝이 났다.

나는 궁금했다.
퇴근 후 아들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너 오늘 학교에서 방귀꼈니?"
"아니! 갑자기 무슨?"

어이없다는 아들의 격한 반응에
아빠는 너의 부끄러운 고해성사를 다 들어 알고 있다면서 추가로 물었다.
"그럼 왜 학교에서 방귀 꼈다고 구글 미니한테 말했어?"

참 해맑은 얼굴로 답을 줬다.
"아.. 구글 미니가 방귀 소리를 어떻게 낼지 너무 궁금했는데 안 해줬어.

그래서 내가 좀 부끄러운 비밀 이야기를 해주면 자기도 방귀 뀔까 봐.."

"..."

"그런데 끝내  안 했어. 나쁜 녀석이야"

'너만 알고 있어'로 시작하는 비밀이야기를 하나 듣게 되면
나 역시.. '이건 진짜 이야기하면 안 돼' 하면서 또 다른 비밀이야기를 주고받는 인간의 암묵적인 대화의 룰.
미묘한 감정의 줄타기는 인간만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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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철형님을 기리며...

2024. 10. 30. 21:31

최근 유튜브 알고리즘에 해철 형님의 영상이 부쩍 많아졌다.
반가운 마음과 안타까운 기억의 섞임이 나의 기분을 장악한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이야기지만
30년이 훨씬 넘는 기간 함께한 그의 이야기를 한 번은 하고 싶었다.

고인이 된 지 10년이 지나 추모 콘서트도 하고 여러 방송매체에서 그의 선한 영향력을 방송하는 것을 지켜보니
10년 전 이맘때가 떠오른다.
갤럭시 노트 시리즈 개발 중이라 새벽에 퇴근하는 날이 잦았던 나와
3살 큰 애와 돌이 갓 지난 둘째를 하루 종일 혼자 돌봐야 하는 와이프의 피로도는 서로의 입장을 고려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날도 날이 바뀌고 퇴근을 했다.

힘겹게 애들을 재우고 그 시간이 돼서야 집 정리를 하던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당신 진짜 너무 한 거 아니냐?'는 원망의 눈빛이 느껴졌다.
하지만 '고생했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낼 힘이 나에게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 날이었다. 그날은.

습관적으로 확인한 네이버 뉴스는 신해철 사망이라는 속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믿기지 않아 몇 개의 뉴스를 더 눌러서 확인을 했었다.

핑~ 그리고 눈물이 났다.
당시 내가 처한 현실의 고됨이 한몫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의 슬픔은 단순히 애정하던 아티스트 한 명의 죽음이 아니라
초등학생부터 30대 후반까지 나의 인생을 함께하며 많은 영향을 준 친한 형을 잃어버린 것에 기인했으리라.

갑작스러운 남편의 눈물은 울고 싶은 걸 꾹 참고 있던 와이프의 감정선을 건드렸고
우리 부부는 새벽 시간 꺼이꺼이 울었다.
서로 다른 이유로 시작된 눈물은 그 원인이 된 감정을 다 쏟아내고 나서야 끝이 났으며
그래서인지 이유는 물어보진 않았다.

테이프 세대였던 나의 등교가방에는 항상 신해철의 테이프들이 몇 개씩 들어있었고
실험적인 음악을 한다고 시도한 여러 음악들이 모두 마음에 든 건 아니지만
간혹 나와 같은 생각으로 대중성이 결여된 음악이라는 비난을 하는 주변인들에게는
음악도 모르는 녀석들이라고 핏대 올려 맞서기도 했다.

'아버지와 나'의 가사가 너무 좋아 연습장에 따라 적어둔 걸
방 청소하다 발견한 엄마는 아들의 효심에 감동을 받은 적도 있었고

토론의 패널로 참여해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생각을 거침없이 피력하는 형님의 모습을 보면서
할 말은 하고 살아야겠다는 인생의 가치관을 정하기도 했다.

음악이나 매체를 통해서만 접한 그의 생각과 행동들이
이렇게 나의 인생에 깊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이제와서는 참 그립기도 하다.

그날 밤의 슬픔이 벌써 10년이나 흘렀다.
나는 이제 10년 전 형님의 나이보다 많은 나이가 되었다.
형님의 노래 가사대로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우울한 삶을 살고 있긴하나
어디 선가 그대에게의 전주가 들리면 흥겨워하며 오~ 예를 흥얼거리는 반전도 있다.

이렇게 난 그가 남긴 흔적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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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섭섭함

2024. 10. 29. 15:35

스무명 남짓의 작은 팀의 리더가 되면서부터 팀원들의 경조사는 꼭 챙기려고 한다
특히, 조사의 경우는 가능하면 직접 조문을 가는 편이다.
기쁜 일은 이미 그 자체로 충분한 축복이지만,
슬픈 순간 함께하는 마음으로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것이 진정한 동료애라고 믿어왔다.


팀원 여럿이 함께가는 조문이 대부분이긴하나,
한번씩 혼자서 가야할 때가 있다.
휴일이거나 장례식장이 멀리 다른 지역인 경우 보통 조의금만 전달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다.
솔직히 나도 갈등을 한다.
'이해하겠지?' '아니야, 그래도 직접 가서 얼굴을 보고 위로를 해야지' '하지만, 차로 세 시간 거리면 휴일 다 갈텐데...'
자연스럽게 휴식을 즐기고 싶은 나와,
책임감 있는 리더로서의 내가 긴 싸움을 벌이지만, 결국 리더가 이긴다.

먼 길을 달려 도착한 나를 본 상주의 얼굴은 보통 놀라움과 고마움의 중간 어디쯤이 대부분이다.
평소엔 보기 힘든 슬픔 가득한 동료의 얼굴을 마주하며, 아침 내내 망설였던 나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동시에 '난 참 좋은 동료이자 리더'라고 속으로 으쓱하게 된다.

참 멋진 리더야.. 라는 생각을 할즈음 동료가 가족에게 나를 소개한다.
'이 분은 나한테 일시키는 사람인데, '내가 자주 말했지?'
'아...'
순간 공기가 묘하게 흐른다.
"아..."라며 길게 이어지는 인사 뒤에 묘한 표정이 스친다.
묘한 표정에 숨은 뜻은
'아, 당신이 우리 남편을 자주 늦게까지 붙잡아두는 x군요...' 겠지?

그 순간, 동료의 말이 메아리처럼 내 머릿속에 울린다.
'내가 자주 말했지?'
'내가 자주 말했지?'
과연, 집에 가서 무슨 말을 그렇게 자주 했던 걸까?

내가 내 상사 이야기를 집에가서 하는 경우는
딱 한 경우뿐인데..

빌이먹을
괜히 왔나..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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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책읽기

2024. 10. 29. 12:37

나는 종종 베스트셀러들을 찾아보는 취미가 있다.

정확히는 베스트셀러들의 제목들만 훑어보다.

특히 자기계발 카테고리를 선택하고 스크롤을 하면서 제목들을 살핀다.

묘하게 힐링이 된다.

'XX 관리론', '이렇게 살아라' 와 같은 가르침을 주려는 제목보다는 '남 눈치 보지 말고 너 맘껏 살아라'는 식의 타이틀에서 쾌감을 느낀다.

책 내용은 모른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모습이 아닌 딱 그 반대의 모습으로 살아보라는 제안일꺼라 짐작만 한다.

이렇게 책 제목만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다보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거겠지?'

나만 이렇게 하루하루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사는 건 아닐꺼라는 마음의 치유를 하게 된다.


요즘은 유독 사십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많이 보인다.

사십에 다시 읽는 XXX, 사십에 인생이 어쩌구, 은퇴가 어쩌구.

혹여나해서 삼십, 오십으로도 검색을 해봤는데, 역시나 사십 만큼은 아니다.


왜?

사십대가 되면 유독 고민이 많아지고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 당황스러우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고조되는 나머지

이 불안함을 극복하기 위해 먼저 살아본 사람들의 지혜를 갈구해서일까?

맞다. 나는 그렇다.

매일 비슷한 하루인 듯 하지만 늘 새로운 고민거리들이 생겨난다.

40대에 이건 꼭 하라는 식의 수많은 책들.

과연 작가는 충실히 이행하고 책을 적었을까?

아니면 지키지 못한 본인의 지난 날을 반성하며 뒷따르는 후배들이여 제발 나와 같지 말아라를 외치는 것일까?


지혜를 갈구한다지만 책 내용을 따라할 생각은 없다.

안그래도 피곤한 하루 책의 내용처럼 충실히 살지 못한 나에 대한 스트레스만 생길 것이 뻔하기도 하며,

가랭이 째지는 것도 모르고 갓생러의 삶을 따라해 실패를 반복해 본 경험을 통해,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구분 정도는 할 나이가 되기도 했다.

다만,

다른이의 눈치를 많이 보지 않으면서

내가 보살펴야 되는 가족과 주변인들을 챙기지만

나의 마음도 모른척하지 않는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만의 호흡으로

하나 둘 하나 둘..

이 오르막길을 오르자고 마음을 다잡는 쉼터의 역할로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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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기억법

2024. 10. 29. 12:32

"영기 엄마 있잖아
교대 나오고 그 집 아들이 정형외과 의사인데, 며느리도 의사고 어디서 병원 한다더라? 들어도 요즘 자꾸 까먹네, 그런데 그 친구가 이번 주말에 식사 같이 하자고 하는데.. 비가 온다고 하네"

"이모 딸 미숙이
왜 그 큰딸이 하버드 다니고, 둘째 아들이 서울대 들어갔잖아.
그런데 이번에 미숙이 신랑이 부산에서 사업을 크게 하는데 이모들을 초대해서  한번 다녀올게"

나의 어머니는 당신의 지인을 소개할 때면 항상 그 지인의 가족, 친척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함께 덧붙이신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나는 이런 식으로 한번 뵌 적도 없는 엄마 주변 사람들에 대해 익숙해져 갔다.

이러한 소개법이 이상하지 않냐고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와이프였다.
"어머님은 왜 본론과 상관없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하시는 거야?"

처음에는 이게 무슨 질문인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내게 어머니의 지인 소개법은 나 스스로 숟가락 들고 밥 먹기 시작할 때랑 그 세월이 같으니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글쎄... 잘 모르겠어.
근데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근데 그 소개가 좀 잘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그런 것 같지 않아?"

"이렇게 성공한 사람이 내 친구다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거라는 거지?"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아내는 분명 그렇게 느꼈겠지만 시어머니를 쉽게 속물로 치부하는 건 조심스러웠던지 말끝을 흐렸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 소개법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했었던 것 같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은 일 잘해?라는 질문에
'아.. 그 친구 대전에서 데이터베이스 전공했는데 해병대 출신이래, ADD에서 인턴을 했다는데
아직 여자친구는 없나 봐.. 일? 일은 모르지...'라는 설명을 주절주절 했던 것 같다.

갑작스러운 와이프의 질문은
지난 인생의 테이프를 빠른 배속으로 훑게 만들었다.
왜 그랬지?
어머니의 영향인가?
어떤 사람을 기억하는 나만의 방법인가?
그렇다면 왜 그 사람의 학업 결과나 직업으로 기억을 하고 있을까?
SKY 나와서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가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것을 알림으로 나도 덩달아 으쓱해지고 싶어서?
아무리 객관적으로 나의 맘을 찾아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다.

나 스스로도 이러한 행동의 이유를 찾지 못한 채 , 하지만 그 이후로는 나만의 기억법을 최대한 입 밖으로 내지 않으려 의식하며 지냈다.

"엄마 친구 영숙이
이화여대 나오고 남편이 교수하다가 이제 은퇴하고 나와서 집에만 있는데
그런데 영숙이가 어제 산에서 도토리를 많이 주웠는데 묵을 어떻게 만드냐고 연락이 왔더라."

오랜만에 듣게 된 익숙한 어머니의 화법은 묻어뒀던 나의 궁금증을 끄집어냈다.

"엄마. 엄마는 왜 그 사람 이야기를 하면 그 사람의 서사를 다 엮어서 이야기를 시작해요?"
학교를 어디 나왔고 신랑이 누구고, 무슨 일을 하고, 아들은 뭘 하고 있으며... 이런 이야기들"

엄마는  당황한 듯 보였다.
당신 역시 한 번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을 테고, 이러한 질문도 처음 받아보셨을 거니.

"글쎄다..그 친구를 생각하면 그 친구 인생에서 가장 큰, 중요한 일들이 함께 생각이 나네.
엄마 고향 성주 촌에서 그 시절에 이화여대 가는게 어디 흔한 일이겠니
서울서 대학 다닌 친구 결혼을 하는데 남편이 교수라고 시골 동네가 떠들석 했거든
그러다보니 그 친구를 떠올리면 그런 기억들이 그냥 따라나오나보네
아들이 어느 대학 들어갔다더라, 취직은 어디 했다느니, 결혼은 누구랑 했는지
우리 나이되면 그런 것들이 큰 일이니까 말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아니. 그렇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입학, 취업, 결혼, 그리고 출산 등등, 이렇게 이어지는 한 사람 인생의 소중한 행사를 함께 기억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

성공한 지인을 통해 자존감을 올려보려는 게 아닌, 그 사람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기억이 각인되어 있어 나오는 소개법이라는 생각이 드니 나는 무엇을 중요하다고 기억하고 있는지 곱씹어 보게 되었다.

학교, 직장, 결혼... 어머니의 그것과 크게 다른게 없긴 한데,
아.. 나에게는 군필 여부가 하나 더 있네.
특히 흔해빠진 육해공군이 아닌 해병대를 나왔다는 건 매우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고 있나보다. '그 친구 해병대 나왔대.' 라는 나와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병무기록까지 덧붙이는 것을 보면...

그럼 여성을 기억하는 방법은 ?
그건 뭐 쉽다.
이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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