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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 결과 여기저기 혹도 있다 하고
고혈압에 고지혈 등등 없던 병들이 한 줄씩 늘었다.
스스로도 건강에 대한 자신이 없어졌고,
비슷한 또래 동료들이 벌써 건강에 신경 쓰는 모습들에 자극을 받아서 헬스장에 등록했다.

이른 새벽 헬스장은 약수터와 같은 풍경이다.
나이 지긋하신 동네 어르신들이 본인만의 루틴으로 저마다의 운동을 하신다.
수십 년을 해온 것 같은 정형화된 운동 동작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탄탄한 몸매의 비결임을 보여준다.
이 공간에서 나는 가장 어린애였다.
나이도, 근육도.

운동이라고는 평생 해본 적이 없으니 헬스장에 가도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 무작정 뛰었다.
새벽 6시 헬스장 오픈시간에 가서 3~5킬로를 뛰고 출근을 했다.
등록하고 4달이 지났다.
뛰는 건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다.
뛰면서도 계속 내적 갈등을 한다.
‘그만 뛸까…’

살은 빠졌다.
4킬로 정도 빠졌지만 다들 잘 모른다.
관심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지나친 관심도 있다.
종종 본가에 들를 때면 오십 줄 바라보는 아들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채고, 세상 가장 큰일인 양 걱정하는 어머니.
엄마 눈에 나는 아직 어린애다.

최근 날이 많이 쌀쌀해졌다.
따뜻한 이불 밖을 나오는 게 힘들어졌다.
내적 갈등을 심하게 한다.
따스함의 유혹에 굴복한 다음 날 헬스장에 갔더니
이제 같은 약수터 멤버로 받아들인 어르신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말을 건넨다.
“무슨 일 있어? 왜 안 왔어?”
내적 갈등 시 이불 밖을 박차고 일어나야 할 이유가 하나 생겨버렸다.

미용실 원장님은 한 달에 한 번씩 본다.
어제는 커트를 하다 말고 살이 빠진 것 같다고, 다이어트하냐고 물었다.
수줍게 그렇다고 했다.
본인은 너무 살이 쪄서 걱정인데 대단하다며
어떻게 뺐느냐고, 달리기가 효과가 좋구나 하며 말했다.
나의 변화를 알아봐 준 두 번째 사람이기에 지나친 관심이 불편하지 않았다.
이렇게 마무리되었다면 참 좋았으련만…
마지막 드라이를 하면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제 그만 살 뺄 거죠?”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머뭇거리는 나에게
“급격하게 운동을 하면 머리도 많이 빠져요. 이미 좀 가늘어진 것 같아요”라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몸의 변화를 알려줬다.
당황하며 나오는데,
“고기와 단백질을 충분히 먹어야 해요”라는 조언도 알차게 남겼다.
의도치 않은 빠짐이 있었구나.

내일 아침, 이불 안에 남아 있어야 할 아주 큰 이유가 생겨버렸다.

ai가 그려준 현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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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기분

2024. 12. 5. 01:21

입사 때부터 함께한 동료가 있다.
회사에서 만난 인연치고는 꽤 오래, 그리고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는 두 살 어린 동생이다.

이 관계가 이렇게 지속될 수 있었던 건, ‘형님, 형님’ 하며 변함없이 따르는 이 친구의 노력도 크지만, 무엇보다 회사 생활에서 생긴 스트레스와 고민을 종종 나눌 수 있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이 친구의 가장 큰 고민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미치겠어요, 형님.”
메신저로 그렇게 말을 걸어오면, 나는 ‘아, 또 한계에 다다랐구나’ 싶어 대화를 받아준다.

“왜? 무슨 일이야?”

“A 부서 담당자가 단체 채팅방에서 이러쿵저러쿵 물어보는데, 그건 B가 답해야 하잖아요.”

“그렇지, 그게 B의 역할이지.”

“근데 안 해요. 제가 해요. 단체방에 제가 있으면, 무조건 제가 답할 거라고 생각해요. 휴가든 교육이든 상관없이요.”

“흠…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는데. B한테 네가 생각하는 업무 범위를 이야기해봤어?”

“해봤죠. 근데 쉽게 달라지지 않아요. 그리고 C도 똑같아요.”

“윗사람들이 너한테만 일을 시키는 게 문제 같은데. B랑 C에게도 책임감을 가질 수 있게….”
이렇게 저렇게 내가 생각한 방안을 얘기해준다. 솔직히 별 대책도 없는 이야기지만, 이 친구가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방관할 수는 없었다.


2달 정도의 주기다.

미치겠어요. 형님

?? 무슨 일이야?

팀원들의 아웃풋이 너무 맘에 안 드는데요, 그걸 지적하면 나만 나쁜 넘이겠죠?”

아냐.. 부족한 부분은 피드백을 줘야지?”

피드백을 엄청 줘요. 그런데도 결과물이 썩..”

그건 너의 기준이 너무 높은 것 아냐?”

아니에요. 그런 건…”

본인의 기준이 높지 않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례를 들어서 제시를 해준다.
자신의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결과물은 성의 없이 일을 하는 팀원들의 탓이라 내가 수긍해 주길 바란다. 

너 말은 맞는데, 그렇다고 팀원들이 해야 할 일을 네가 다 붙들고 할 수는 없잖아..
그게 시간도 부족하고, 장기적으로 봐도 맞는 방향은 아닌 것 같아.” 

그래도 이렇게는 보고를 못하니, 제가 다시 해야죠..”

늘 이런식이었다.
매우 힘들어하면서 계속 매우 힘들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 지내는 것 같았다.
짠하기도 하면서 도와줄 방안이 뾰족한 게 없어 딱하기도 했다.
하지만.. 말하지 못한 찐 속내는 함께 일하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너의 철저한 성격 탓이야.’였다.
그리고 나의 동료는 BC처럼 나에게 모든 걸 의지하지 않음을 다행스레 생각하며 위안을 하기도 했다.

이번 조직개편 결과 이 친구는 한 계단 올라섰다.
깜짝 발표였지만 이 친구를 아는 주변인들의 반응은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것이었다.
꼼꼼한 일처리와 유관부서와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등을 매우 잘해왔다는 것이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저 일처리를 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매번 이야기했었는데
주변에서는 저 일처리를 가장 잘했다고 칭찬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어찌 되었건 힘들어한 만큼 인정을 받은 거라 생각하니 헛된 곳에 헛심을 쓴 건 아니구나 라는 안도감도 들면서
결국은 힘들어야 도약을 하게 되는구나라는 당연한 진리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만큼 몸이 덜 힘들었던 것인가?'
'난 이렇게 뒤쳐지게 되는 것인가?'

축하와 함께 묘하고 찌질한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숨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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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12월 3일

2024. 12. 4. 18:33

계엄령?
의아함이 괘씸함으로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늦은 밤 유튜브 라이브로 대통령의 얼굴을 보는 것도 갸우뚱할 상황인데
방송 제목이 '비상계엄령 선포'라니..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방송을 지켜보니
자기 사람들 탄핵하는 민주당과, 자기가 돈을 펑펑 써야 되는데 그걸 못하게 하는 민주당에 대한 분노가 거칠게 터져 나오고 있었다.
국회가 당연히 해야 되는 합리적인 결정사항에 대해서 저렇게 큰 분노를 표출하는 것을 보면 이 사람은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주변에서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는구나.

알면 알수록 괘씸해졌다.
그간 드러난 행동들에 대한 반성, 제대로 된 해명조차 못한 사람이 그런 치부를 덮기 위해
국가를 위기로 몰고 가려했다는 사실이 너무 괘씸했다.
이건 빨강이냐 파랑이냐는 정치적인 색깔의 문제가 아니다.
가성비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꼬박꼬박 세금 내며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당연히 분노하고 화를 내야 될 내용이다.

참 지랄도 풍년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24년 12월 3일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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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2024. 11. 27. 12:56
이걸요?
제가요?
왜요?


MZ세대의 /요요요 / 화법에 대한 이해와 대응에 대한 교육을 들었다.

이걸요? 는
지시받은 업무의 정확한 내용과 목적에 대한 설명 요구가 담겨있고,

제가요? 는
많은 임직원 중 해당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사람이 왜 자신인지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고

왜요? 는
해당 업무를 해야 하는 이유와 필요성, 기대 효과 등에 대한 설명 요구라고 했다.

회사에서 진행되는 참 알 수 없는 수많은 교육 중에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교육이 MZ 세대 이해인 것 같다.

'왜 유독 우리는 MZ세대를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왜 그들은 이해를 받아야만 하는 세대인 것일까?'

'왜 MZ세대들에게 X세대 이해를 강요하진 않는 것인가?'

X세대들은 알아서 회사와 동일체를 몸으로 보여주던 세대라서 이해 따윈 필요 없다는 건가?
우리도 요요요를 내지르고 싶다.

이걸요? 맞아요!
제가요? 그래요!
왜요? 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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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살기라..

2024. 11. 8. 23:51

1년 살기 하러 호주에 간 동기와 대화를 나눴다
나와 같이 입사해서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일상을 견디다 못해
지난 이맘때쯤 짐 싸들고 어린 딸까지 덜쳐 업고 호주로 날아가버렸다.

귀국 준비를 하고 있다며 오랜만에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호주에서의 1년간에 대한 만족이 한마디 한마디에 느껴졌다.

휴직을 결심할 즈음 운전면허를 따고 연수를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운전대가 우측에 있고 우리나라 도로와 반대인 호주에서 쌩쌩 운전한 이야기며
딸애 학교에서 애들 도시락 만드는 자원봉사에 지원해서 한 이야기,
운동하고는 거리가 멀던 친구였는데 골프를 배워서 필드를 나간다는 소식까지

1년 새 이 친구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으며
그 무엇이 이렇게 적극적인 성격의 사람으로 변하게 했는지
대화를 나눌수록 너무 놀라웠다.

몇 장의 동화 같은 풍경 사진을 투척하면서 남긴 멘트가 너무 인상적이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남들 1년 휴직 후딱 지나간다더니 아니더라.."

"내 주변에 휴직하고 온 사람들이 다들 시간 금방 지나갔다고 하던데? 넌 아니었어?"

"매일 같은 일상은 중복되는 이벤트가 압축되어 기억되니 금방 지나가는데
새로운 경험은 하나하나의 이벤트가 다 저장이 되니 후딱 지나가지 않아"

...

"그러게, 늘 같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나는 정말 시간이 빠른데..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정말 멋진 말인 것 같아"

"내가 만들어낸 멋진 말이라기보다는 경험을 통한 발견이지.. 훗"

호주는커녕 가까운 제주도에서 1달 살기조차도 꿈만 꾸고 실천하지 못하는 나에게
용기 있는 이 친구의 실천력과 1년간의 다양한 경험으로 생겨난 내공은
저 마음 깊은 곳에 오래전부터 미뤄 미뤄 숨겨뒀던 아주 쪼그마한 소망을 간질간질 끄집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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