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근황

2021. 7. 13. 04:57

가슴이 먹먹하다.
참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진다.
힘내라는 말이 이렇게 슬픈 말인지 몰랐다.
아침이 오는 게 너무 무서워 잠을 설친다.
딱 6일째 되는 날이다.
아버지가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출근길에 2주간 보지 못한 부모님 생각이 나 전화를 했고,

늘 자식 걱정에 당신들은 별일 없다고만 하시는 엄마가
지난 2주간 아버지가 식사를 못하신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죽이란 죽은 다 끓여보고 있다는 엄마의 푸념이 예사롭지 않더라.

내시경을 했고 빈혈 수치가 너무 낮아 수혈을 위해 큰 병원으로 간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순간적으로 안 좋은 상상을 했다.
급히 달려간 병원 대기실에서 2주 새 너무 수척해지신 얼굴 대비 너무 커져버린 아버지의 배를 보고
불안감이 점점 더 조여왔다.
CT 결과를 놓고 젊은 의사는 암이라는, 그리고 전이라는
참 무서운 단어를 내뱉었고
난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응급실에서 각종 바늘을 꽂고 누운 아버지를 멀리서 지켜보며

적지 않은 연세의 엄마에게 아버지가 암이라는 이야기를 전하자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걱정과 달리 너무 담담하셨다.

'너네 아버지 괜찮다. 저 연세에 수술은 못한다.
내가 좋은 음식 챙겨드리면 그냥 또 이렇게 지낼 수 있다 '
어머니의 말씀은 평생을 함께해 온 반려자에 대한 책임감이
슬픔을 누르는 것처럼 보여 가슴이 너무 아팠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그 어떤 일보다 더 빨리 해결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나 대신 나서서 해결해 줄 사람도 없다.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울음이 터졌다.

이 나이에도 이렇게 눈물이 남아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수시로 눈물이 났다.
운전을 하다가도, 세수를 하다가도,
아빠라고 뛰어오는 어린 아들을 안아주다가도 눈물이 났다.

6월 18일
하루는 참 길었다.
주말 수혈 3팩을 하시고 아버지 혈색은 좀 돌아오셨다.

하지만 금식 중임에도 배는 점점 더 부푸는 듯하다.
아버지는 급성 위염으로 알고 계셔 내일이면 퇴원할 수 있노라 기대하고 계신다.
담담한 척하셨던 어머니는 집의 구석구석 대청소를 하셨다.
너무 심란하셔 어딘가에 집중할 대상이 필요했으리라.
밤새 찾아본 인터넷 검색의 결과 아버지의 증상은 좋지 않았고

나는 자꾸 더 최악의 최악을 상상하게 되고
그나마 조금 잡고 있던 멘탈의 끈을 놓쳐버렸다.

6월 21일

급하게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진행했다.
퇴원한다고 기대하셨던 아버지에게는
대학병원에서 교수로 있는 친척 핑계를 대고 추가 검사를 받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매초가 너무 소중하고 다급한데
응급실에서의 무의미한 대기, 겨우겨우 침대 하나 찾아들어와서 또 대기
코로나로 보호자 1인만 동반이 가능한 상황인지라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만 듣고 있자니 이 모든 상황이 너무 절망스러웠다.
눈을 감고 누워계신 아버지를 휴대폰으로 찍었다.
내 얼굴도 넣어서 함께 있는 사진도 찍었다.
병원 응급실 좁은 침대에서 눈을 감고 누워계신 아버지라도 남기고 싶어 그냥 막 찍었다.

회사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통화 중 울 것 같아 받지 말까라는 생각도 했는데.
많이 의지하던 선배였기에
그간 꾹꾹 눌러 참았던 설움에 한번 터진 울음은 참을 수가 없었다.

힘내라는 말이 이렇게 슬픈 말이었던가.

6월 22일

복수 천자를 하셨다.
복수도 잘못 빼면 쇼크가 온다느니 저혈압이 온다느니 너무 무서운 글들을 많이 봐서
아버지 부푼 배의 물을 빼드리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도 불안함에 초조했다.
드디어 18일 날 동네 병원에서 하셨던 내시경 조직 검사지를 받았다.
대학병원에 급하게 서류를 제출하고 결과지에 적힌 내용으로 구글링을 해보았다.
Poorly differentiated... adenocarcinoma
안 좋다.

열흘 뒤에 외래 일정을 잡아주고 다른 환자를 위해 방을 빼란다.
아버지 배는 불룩하고, 지금 모든 것이 조심스러운데 퇴원을 하란다.
나는 어찌 의사 친구 한 명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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