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허기짐

2018. 10. 23. 05:30

심한 가을 앓이와 함께 찾아온 40춘기는 별 소득도 없이 끝이 나버렸다.

나를 힘들게 했던 나의 주변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고, 나는 또 스스로 나의 마음 둘 곳을 찾는 것으로 이 고비를 넘기려 했다.

딱 이런 패턴이었다.

남들보다 가을에 먼저 반응하고, 허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어느 한곳에 집착하게 되는..

매년 아니 수십년 그래왔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마음의 허기짐을 채우기 위해 집착한 것이 책이다.

폭풍 흡입. 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정도로 이 책 저 책을 막 흡입을 한다.

이 허기짐을 술이 아닌 책으로 채우게 된 데에는,

우선 어느 순간부터 몸이 술을 힘들어 한다는 점, 남들 눈에 비칠 고상한 취미에 대한 자부심?,

하지만 무엇 보다 큰 이유는, 현실 도피가 아닌 가 싶다.

하기 싫은 일인데 정말 해야할 때, 그리고 그 일이 너무 많아서 다른 것에 눈을 돌릴 시간이 없을 때,

내일 있을 중요한 시험 공부를 앞둔 늦은 밤, 책상 정리 같은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부터 했던 학창 시절 처럼..

회사 일이 쓰나미 처럼 몰려와 나에게 편히 차 한잔 마실 시간을 주지 않는 요즘, 

온통 머리속으로는 업무 걱정에, 내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일이 없는가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해 하면서도,

난 그 큰 걱정덩어리 사이 사이 조금 빈 공간을 내가 좋아라하는 책의 내용으로 매울려고 한다.

지적 허기짐? 이런 말이 맞는 지는 모르겠지만, 

쓸데 없는 걱정으로 내어준 나의 머리에 오롯이 내가 좋아하는 것도 채워 줘야된다는

의무, 오기 같은 묘한 심리로 글 읽기에 집착을 하고 있다.

그 허기짐은 현실을 부정하고 도망가고 싶은 심리도 한 몫한게 아니었을까..

가을이라는 계절 덕에, 신간들이 넘쳐나서 나의 지적 허기짐을 채워 줄 재료 걱정은 없다는 게 그나마 고마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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